[기고] 김정은의 새로운 대남 심리전

입력 2024-02-06 04:07

새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발 폭탄 발언과 핵 전면전 선언을 포함해 다양한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좀 더 냉정하게 돌아보면 기본 구도가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현재 남북 대치 구도는 전형적인 인질 납치 상황과 같다. 북한이라는 납치범이 핵이라는 무기를 수단으로 인질에 해당하는 한국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면서 돈(경제제재 완화와 경제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 정부와 군, 그리고 한·미동맹은 인질범을 봉쇄하고 압박하고 있는 공권력이다.

김정은 시정연설의 1차 청중은 북한 주민이다. 경제위기와 외부문화 유입으로 인한 체제 불안정성 증대에 대한 대응이다. 위기 국면 조성과 적에 대한 타자화·비인격화로 정권에 대한 지지를 끌어올리려는 전략에 해당한다. 2차 청중은 한국 정부와 국민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의도된 대남 심리전 성격도 있다. 이 같은 전략 커뮤니케이션의 의도는 ‘공포 조장’을 통한 ‘부정 압력’의 증대다. 부정 압력은 청중들의 심리적 근심, 불안, 인지 부조화를 가져와 이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 심화로 이어진다. 궁극적으로 이는 정부에 대한 비난과 부정적 여론의 상승으로 연결된다.

이 같은 오랜 대치와 협상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의 책략에 말려들지 않고 우리 자신의 게임 플랜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김정은의 무력도발에 대한 상호 확증 파괴 의지와 역량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의 무력도발을 억제하는 것은 김정은의 선의나 우리의 진정 어린 대화, 협력의 노력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대량 응징보복 역량이다. 기존의 대북 경제제재와 한국 문화 및 정보 콘텐츠의 북한 유입이 김정은 정권의 체제 불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입증됐다. 우리는 이를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이번에 기존과 달리 전통적인 대남 심리전 창구를 폐쇄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대남 심리전을 중단했다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동안 비용과 효과 면에서 효용성이 떨어졌던 과거형 전략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정리하고 오늘날 정보 환경에 최적화된 유튜브와 동영상, SNS 등에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일 수 있다.

통일부는 북한에 대한 ‘주 협상자’로서의 역량과 노하우를 계속 활용해야 한다. 모든 전략 커뮤니케이션에는 굿캅과 배드캅이 모두 필요하다. 통일부는 그간 굿캅의 역할을 해왔다. 다만 이 기회에 접근방식을 바꿀 필요는 있다. 통일부는 대북 협상부처이지 대북 협력부처가 아니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협상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따라서 통일부는 굿캅 역할을 하되 일시적 대화 단절을 포함한 다른 방식의 전략 커뮤니케이션도 유연하게 활용해야 한다.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