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주호민씨 아들 특수교사에 대한 유죄 판결은 ‘몰래 녹음’ 증거능력을 넓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현재까지 법원 판결을 종합하면 아이에게 ‘방어 능력’과 ‘표현력’이 얼마나 있는지가 증거능력 인정 기준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경우 증거능력이 인정 안 되고, 자폐아나 영아는 인정되는 식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지난 1일 주씨 아들을 정서적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 선고를 유예하면서 주씨 아내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점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제3자 녹음) 또는 청취하는 행위를 처벌토록 한다. 대화 당사자인 학생이 직접 녹음기를 갖고 녹음하는 건 위법이 아니다. 하지만 학부모가 학생에게 알리지 않고 교실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형사 재판 증거로 쓸 수 없다.
다만 곽 판사는 형법 20조 정당행위를 근거로 주씨 사건 녹음을 증거로 인정했다. 형법 20조는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정당행위로 인정되려면 목적의 정당성, 긴급성, 다른 수단이 없는 경우(보충성) 등이 인정돼야 한다. 주씨 사건에서 법원은 CCTV가 설치돼 있거나 어느 정도 방어능력과 표현력이 있는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 게 아니었던 점, 장애가 있는 소수 학생만 있었던 점을 고려했다.
앞서 대구지법 항소심의 경우 지난 2019년 생후 10개월 아이 돌보미가 욕설을 한 사건에서 몰래 녹음 증거능력을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생후 10개월은 언어능력이 온전히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애초 ‘타인 간의 대화’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적 요구와 비교할 때 피고인 목소리를 몰래 녹음했다 해서 사회통념상 허용 한도를 초과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최근 대법원은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발생한 학부모의 몰래 녹음은 ‘타인 간 대화 녹음’에 해당한다며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사건 2심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은 표현력이 제한된 점, 녹음 외 유효·적절한 수단이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사정만으로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 사건의 경우 어느 정도 표현이 가능한 아이들 30명이 함께 수업 중이었다는 점에서 주씨 사건과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아동학대 몰래 녹음 사건은 상급심 판결이 더 쌓여야 명확한 기준이 제시될 전망이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제3자 녹음 통신비밀보호법 조항을 위반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는 없었다”며 “주씨 사건 재판부 논리처럼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할지는 상급심에서 논의할 여지가 열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