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폭력에 반대한다며 입영을 거부한 남성에게 법원이 ‘거부 사유가 진실하지 않다’며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확정했다. 입영 거부 전까지 반전 신념을 드러낸 적 없고, 평소 전쟁게임을 즐긴 사실이 확인되는 등 양심적 병역 거부 주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10월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병역법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법에 정한 기간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A씨는 재판에서 “폭력과 전쟁에 반대한다는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며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라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의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고 진실돼야 한다”며 “병역 거부자가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런 신념을 진실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A씨는 입영 거부 전까지 국가기관에 양심적 병역 거부의 뜻을 밝히거나, 비폭력·반전·평화주의 관련 활동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가 평소 전쟁게임 ‘배틀그라운드’를 즐겨 한 사실도 의심이 드는 정황으로 지목했다. 재판부는 “가상세계에서 총기로 캐릭터 등을 살상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일과 다르긴 하다”면서도 “비폭력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피고인이 이를 즐겨 했다는 사정은 그 양심이 과연 진실된지 의문이 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A씨의 입영 거부 이유인 상명하복 문화와 군 내 인권침해 및 부조리는 양심적 병역 거부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A씨가 항소했지만 2심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병역의무 이행이 피고인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파멸시킬 정도로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형을 확정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