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정치 참여 막는 문화가 오히려 극단주의 양성”

입력 2024-02-01 00:03 수정 2024-02-01 00:03
최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공격한 중학생 A군(15)의 범행 이유 중 하나는 ‘정치’였다. A군은 범행 직후 “배 의원이 정치를 이상하게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10대 청소년이 정치를 이유로 여성 정치인을 돌로 십여 차례 가격한 사건은 정치혐오와 양극화 등 한국 정치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정치 활동을 하고 있는 10대들은 제대로 된 청소년 정치 교육이야말로 이런 범죄에 대한 예방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31일 당적이 있거나 청소년의회 등에서 정치 활동 중인 만 16세 이상 청소년 5명과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청소년 정치 교육과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문화가 오히려 10대들의 정치혐오와 극단주의를 양성하고 있다”며 “청소년이 올바른 정치 토론을 배우고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어른들이 나서서 가르쳐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청소년특보로 활동한 박지우(16)군은 “배 의원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은 우리 정치가 얼마나 양극화돼 있는지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들이 유언비어나 혐오를 퍼뜨리는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극단적인 정치 풍조에 휘말리기 쉬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22대 총선 출마를 위해 최연소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양승하(17)군은 배 의원을 공격한 A군에 대해 “부모나 사회가 열린 마음으로 정치에 대해서 A군과 소통했으면 좋았을 텐데 A군 혼자서 온라인을 통해 정치관념 등을 일방적으로 배우다 보니 잘못된 이해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군은 총선이 치러지는 4월 10일이 되면 만 18세가 돼 총선 출마가 가능하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여야 모두 선거 승리를 위해 청소년을 이용하려 했을 뿐 청소년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박군은 “여야 모두 당내 청소년 조직을 행사와 축제에 얼굴마담 정도로 쓰고 이후에 헌신짝처럼 내다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청소년의 정치 관심을 억압하는 문화가 청소년이 올바른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초(4~6학년)·중·고등학생 10명 중 9명 가까이(85.7%)가 사회와 정치 문제에 의견을 제시해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답했다.

2020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대선과 총선의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됐지만, 2022년 20대 대선에서 18세 청소년 투표율은 71.3%로 평균(77.2%)보다 낮았다.

지난 30일 국회에서 열린 ‘청소년 정치적 기본권 토론회’에선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 탓에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이 박탈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치에 관심 있는 청소년은 또래로부터 조롱이나 비하를 당하기 일쑤다. 이런 문화를 바꾸려면 청소년도 자유롭게 정치를 토론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성가족부 산하 비영리법인 대한민국 청소년의회에서 의원으로 활동 중인 오지민(18) 민주당 청소년당원은 “친구들은 보통 정당이나 정치 자체를 조롱하거나 적대시한다”며 “저는 청소년 인권에 관심이 있어 직접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찾기 위해 입당했는데, 주변 친구들은 이재명 대표를 비하하는 별명을 쓰면서 놀릴 뿐”이라고 말했다.

개혁신당에 입당한 B군(16)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과거 의혹을 꺼내고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제 선택을 평가절하한다”며 “교과 과목과 연계해 정치적 입장을 어떻게 표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교육받고 싶다”고 말했다.

10대 정치인들은 청소년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살아있는 정치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양군은 “10대들이 직접 입시제도 등 관련 정책에 의견을 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청소년의회에서 청소년의원으로 활동하는 박진환(17)군은 “교육감 선거에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며 “관심 있는 정치 사안에 대해 또래들과 직접 토론을 할 수 있는 게 큰 경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