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 1심 무죄 판결은 판결문만 3200쪽에 달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선고에만 4시간30분가량이 걸렸다. 재판부 소속 판사들은 판결을 마무리 짓기 위해 현재 2년 기준인 ‘한 재판부 근무 기간’을 1년 연장해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재판장 이종민)는 29일 오후 양 전 대법원장 판결문 3160쪽을 법원 내 전산망에 등록했다. 판결문은 공소장과 별지가 350쪽가량이고 본문만 2800쪽이 넘는다. 워낙 분량이 방대해 이날 오전 등록 과정에서 전산망에 문제가 발생했다. 오후가 돼서야 등록이 완료됐다.
재판부는 지난 26일 오후 2시부터 총 4시간25분간 선고문을 낭독했다. 법원에서 따로 통계를 집계하지는 않지만, 판결문 분량과 선고 시간 모두 사법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 지역의 한 법관은 “본문이 1000쪽 넘는 판결문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판결문 작성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형사35-1부는 이종민(사법연수원 29기) 임정택(30기) 민소영(31기) 부장판사 세 명으로 구성된 ‘대등재판부’다. 세 법관 모두 2021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부임해 형사35부 재판을 맡았다. 한 재판부에 2년을 근무하면 인사 대상이 되지만 이들 모두 판결을 마치고 떠나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2월 잔류했다고 한다. 재판부가 교체되면 갱신 절차로 장시간이 소요되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법관은 “2년이 되면 다른 재판부에 갈 수도 있었는데 책임감도 대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 판결은 법원 내부에서도 관심을 두고 지켜본 사건인 만큼 부담감도 컸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3년간 거의 매일 법원 구내식당에서 재판부끼리 저녁을 해결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외부 약속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9년 2월 재판 개입 등 47개 혐의로 구속 기소됐지만 지난 26일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