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는 선원 승선 없이 원격 제어로 선박을 운항하는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를 위해선 실제 해역에서 실험 운항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법상 규제는 유인(有人) 선박에 맞춰져 있다. 선박직원법·선박안전법 등은 선박 내 승무원 탑승을 전제로 하며 500t 이상 선박은 도선사 탑승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어 무인 선박 실증에 부적합하다. 이는 기존 법·제도가 기술·산업 발전이나 산업 간 융·복합 추세를 미처 반영하지 못해 기업 발목을 잡는 규제의 대표적 사례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시행령·시행규칙이나 행정규칙(훈령·예규·고시) 단계에서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주는 59건의 ‘한시적 규제유예 과제’를 선정해 국무조정실에 건의했다고 29일 밝혔다.
여기에는 규제 준수를 위한 기술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규제부터 덜컥 도입하는 사례도 포함됐다. 국토교통부는 건설사가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보완 시공을 의무화하고 기준 미달 시 아예 준공 승인을 내주지 않는 내용의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소 방안’을 지난해 12월 내놨다. 문제는 강화 기준을 충족할 만한 공법이나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없다는 점이다. 한경협은 “소음 방지 보완 기술도 상용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사용 승인 보류가 날 경우 업체는 막대한 손해배상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규제 유예를 건의했다.
기업이 준수하기 어려운 과도한 규제도 있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면서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의 자격 요건을 관련 경력 6년 이상으로 규정했다. 한경협은 유럽연합(EU)의 데이터보호관리자(DPO)에 비해 경력 기간 등이 과도해 기업 부담이 크다며 적용 시기를 2026년 이후로 미뤄달라고 건의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법·시행령뿐 아니라 훈령·예규·고시 등의 행정규칙과 부처 내규, 지방자치단체 각종 조례까지 무수히 많은 단계에서 기업 규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무조정실이 주도해 기업 현장의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