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적폐청산”… ‘양승태 무죄’ 거센 후폭풍

입력 2024-01-29 04:09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 1심 무죄 선고에 후폭풍이 거세다. 문재인정부의 ‘적폐 청산’ 기조 아래 특수부 검사 30여명이 투입돼 8개월간 벌인 수사였다. 양 전 대법원장 수사 기록은 17만쪽이 넘는다. 비록 1심이나 47개 혐의에 전부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 기소가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정(司正) 수사 명목으로 정책적 판단에 직권남용죄의 칼날을 들이대는 검찰 관행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재판장 이종민)는 지난 26일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등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에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주요 혐의인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등 재판 개입은 인정되지 않았다. 위헌제청 결정 취소 등 일부 사건에선 하급자들의 재판 개입이 인정됐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정농단 사건과 비교됐던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도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이 일부 법관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별도 관리하고 희망지 배제 인사를 한 것은 사실이나 “전보 인사는 인사권자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해당 의혹은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관 재직 당시 최초로 고발했다.

1심 판결은 결국 일부 사법행정권이 남용된 측면은 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담하에 조직적 사법농단이 이뤄졌다고 보긴 어렵고, 양 전 대법원장을 처벌할 사안도 아니라는 취지로 요약된다.

법조계에선 혐의가 인정될 때까지 수사 대상자를 탈탈 터는 ‘표적 수사’, 방대한 혐의를 모두 묶어 재판에 넘기는 ‘트럭 기소’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은 광풍에 가까웠던 사법농단 수사로 쑥대밭이 됐다. 기소된 당사자들 입장에선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농단, 사법농단 사건 이후 직권남용죄가 지나치게 확장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면 한도 끝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