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정치만 배운다” 청소년에 혐오 심는 유튜브

입력 2024-01-29 00:04 수정 2024-01-29 00:04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의 올바른 정치관 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 의원을 공격한 A군(15)의 명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수사 중이지만 정치인을 향한 혐오와 공격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정치나 사회 참여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유튜브 등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극단적 정치 콘텐츠를 접하는 건 손쉬운 환경이다.

2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치·시사 이슈에 관심을 갖고 관련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들은 정보를 친구들과의 단체 대화방에 올리거나 자신의 SNS에 올리는 10대가 늘고 있다.

B군은 최근 한 청년 정치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B군의 SNS는 큰 화제가 됐다. 친구들의 관심에 으쓱해진 B군은 때때로 정치 관련 뉴스나 유튜브 링크를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A군을 비롯해 청소년이 정치를 접하는 통로는 대부분 유튜브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1년 조사한 ‘청소년 정치참여 실태와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은 정치 관련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유튜브(중학생 54.7%, 고등학생 53.2%)를 가장 많이 이용했다. 학생 절반가량이 유튜브로 정치를 배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유튜브에는 정치 진영 간 대립을 부추기는 극단적 콘텐츠가 많다. 진보와 보수 간 수위 높은 비방과 가짜뉴스도 넘쳐난다. 이에 청소년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정치의 전부로 인식할 위험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정쟁 이슈를 과잉소비했다면 폭력적인 행동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A군이 젠더 갈등이 만연한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배상훈 우석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이 있었던 배 의원을 향해 ‘뒤통수 한 대 때렸으면’이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며 “이를 접한 A군이 우발적으로 배 의원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과외 교사 계모씨는 최근 중학교 2학년 학생과 수업을 하던 중 “여성가족부를 없애야 해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계씨가 ‘여가부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자 학생은 “세금 먹는 벌레들 아니에요?”라고 되물어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이처럼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커진 반면 학교가 청소년에게 현실 정치에 대해 가르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교원에게 부여되는 정치적 중립의무 때문이다. 지방의 한 중학교 교장인 B씨는 “최근 개봉한 영화 ‘서울의봄’을 학생에게 보여줬다는 것만으로 고발을 당하는 상황에서 정치 이슈를 편히 말할 교사가 있겠느냐”며 “학교에서 이뤄지는 정치교육은 현실 문제보단 도덕적 측면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에게 자극적 정치 콘텐츠 접근을 막는 방법도 현실성은 낮다.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 교육을 확대해 청소년이 정치 이슈를 올바르게 수용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나의 교과목으로 만들어 필수로 가르친다면 청소년의 정치 관련 미디어 정보 수용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환 김용현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