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법조계는 ‘사법농단’ 사건 중 마지막 1심 선고가 예정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주목하고 있다. 법원이 임 전 차장 등 일부 실무진의 직권남용 혐의는 인정될 여지를 열어뒀기 때문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재판장 이종민)는 지난 26일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실무자인 임 전 차장의 일부 행위는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주로 문제가 된 건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행위였다.
재판부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해 심의관에게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 것을 두고 “표현의 자유 및 연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위법한 지시”라며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했다.
법원은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 관련 재판 개입 의혹에도 실무진의 일부 행위가 부당했다고 봤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해당 법원 결정 관련 대책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임 전 차장 또한 해당 범행에 가담한 혐의를 함께 받고 있다.
이 전 상임위원이 파견법관에게 헌재 내부 정보 수집을 지시한 것도 직권남용으로 판단됐다. 이는 이 전 상임위원의 2심 재판부에서도 유죄로 인정했던 내용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정보 수집을 지시했다고 볼 증거가 없어 무죄가 선고됐지만 임 전 차장 재판에선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실무적으로는 대법원장보다 행정처 차장이 중요한 일을 하는 자리라고 볼 수 있다”며 “임 전 차장의 경우 일부 유죄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재판장 김현순)는 다음 달 5일 임 전 차장 1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과 재판부는 다르지만 사실관계가 같아 이번 판결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차장은 지난해 11월 결심에서 “사법행정 업무를 하며 복수의 시나리오와 대응 방안을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했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임주언 양한주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