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한테 왜 이러세요?

입력 2024-01-30 03:07 수정 2024-01-30 14:04
광야아트미니스트리의 창작 뮤지컬 ‘아바(AABA)’에서 요나 선지자가 다시스로 향하는 크루즈선에서 폭풍우를 만난 뒤 하나님께 “내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라며 부르짖고 있다. 광야아트미니스트리 제공

‘하나님, 나한테 왜 이러세요?’ 다소 도발적인 문장 같지만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수없이 외치는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지 못해서, 마음같이 자녀 양육이 되지 않아서, 생각지도 못한 병마가 찾아와 한탄하듯 내뱉는 세대 불문의 독백이기도 하다.

이 외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성경 속 캐릭터가 있다. 구약에 등장하는 요나 선지자와 신약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 나오는 큰아들이다. 자기 맘에 드는 계시만 전하고 싶어하는 불만투성이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원수 같은 니느웨 백성들에게 회개와 축복을 전하라는 날벼락 같은 명령을 받는다. 아버지의 상속금을 챙겨 사라져버린 개념 없는 동생을 뒤로한 채 집안의 유일한 상속자로 살아가는 큰아들은 아버지께 원수 같은 동생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야말로 “아버지 저한테 왜 이러세요”라고 항변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아버지의 뜻’을 향한 순종 대신 ‘자기 뜻’대로 회피를 선택한 두 사람이 한 곳에서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발칙한 상상을 무대 위에 펼쳐 낸 작품이 있다. 2012년 11월 초연된 후 12년여 만에 관객들을 찾아온 창작 뮤지컬 ‘아바(ABBA)’(포스터)이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광야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광야아트미니스트리 총괄 PD 김관영 목사는 “기발한 스토리와 마음을 울리는 넘버(뮤지컬 노래를 나타내는 용어), 화려한 안무 덕분에 단번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던 작품이자 관객들이 가장 다시 보고 싶은 공연으로 꼽았던 작품”이라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 채, 자신이 규정해 놓은 아버지만 인정하려는 두 요나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설명했다.

역사에 남은 기록 한 줄에 상상력이 더해져 영화 ‘광해’ ‘천문’ 같은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아바의 상상력은 탕자 이야기에 덧대진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윤동권 선교사는 “니느웨로 떠나간 동생을 찾아오겠다며 아버지를 속이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되는 큰아들의 이름을 요나로 설정하면서 욥바 항구에서 만나는 두 요나의 이야기가 구현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쇼케이스에선 ‘로고스의 서재’라는 가상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성경 이야기를 하나로 결합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욥바 항구로 향하는 두 요나, 다시스행 크루즈선에 탑승한 이들의 타락한 모습과 거대한 폭풍을 만나 깨닫는 삶의 주권 등이 시연됐다. 특히 호화로운 크루즈선의 ‘아비소스(참 진리가 없는 지옥) 파티홀’에서 벌어지는 가면무도회 장면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날 선 노랫말과 어지러운 조명, 파격적 안무로 표현하며 폐부를 찌른다.

상속금을 탕진한 뒤 아버지께 돌아가겠다고 고백하는 탕자 모습. 광야아트미니스트리 제공

큰아들 요나 역을 맡은 변정우 배우는 “가면을 쓴 채 ‘이 순간이 영원할 듯 사는 거야.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면 돼’라고 외치는 장면은 진짜 자기 모습을 가리고 세상적인 자랑만 채워 넣는 SNS상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나 자신만 믿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작품에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혔다는 점도 기대를 모으는 대목이다. 두 요나가 보여주는 서사에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소극장급 공연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LED 패널과 조명, 회전 무대 등이 활용됐다.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학·석사 과정을 만장일치 최우수로 졸업하고 뮤지컬 ‘노웨어’, 연극 ‘시비노자’ 등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리카C가 합류하면서 트렌디함과 깊은 영성을 담은 넘버들이 귀를 사로잡는다.

불순종으로 시작된 여정에서 만난 두 요나가 하나님께 고백하는 결론은 무엇일까. 공연은 다음 달 1일부터 8월 31일까지 광야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