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심부전·고혈압·당뇨 환자, 무턱대고 링거 맞으면 위험

입력 2024-01-30 04:08
대부분 비급여, 클리닉이 수입원 삼아
실손보험금 지급 매년 늘어나는 추세

건강 이상 신호 근본 원인 해결 없이
일시 효과에만 의존하면 낭패 볼 수도

수액 주사 장면. 특정 질환이 있는 사람은 수액 요법이 위험할 수 있어 미리 처방 의사에게 질환명과 복용 약을 알려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흔히 ‘링거 주사’로 알려진 영양 수액 주사. 요즘처럼 감기나 독감 등 호흡기질환이 유행하는 계절은 일선 개원가에서 수액 주사의 ‘대목’으로 통한다. 독감 치료를 위해 동네 의원을 가면 덤으로 수액 주사를 권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사이엔 점심시간을 이용해 인근 클리닉에서 30분~1시간 정도 영양 수액을 맞는 게 트렌드처럼 됐다.

대부분 비급여인 수액 주사를 주 수입원으로 삼는 클리닉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들 병원 내부나 소셜미디어(SNS)에서 감초·태반 주사(피로·갱년기 증상 완화), 마이어스칵테일 주사(통증·항염증), 싸이모신 주사(면역력 강화) 등 알 듯 말 듯 하거나 생소한 이름의 영양 주사 효능을 내세우는 홍보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수액 주사 관련 실손보험금 지급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배우경 교수는 29일 “호흡기 환자가 느는 환절기에 영양 수액 치료 수요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 이후엔 독감이 계절과 무관하게 유행하고, 직장인 중심으로 일상적인 수액 주사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여서 이젠 연중 수액 수요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부 수액 요법은 위험할 수 있어 무턱대고 맞으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불필요하게 자주 수액 주사를 맞는 경우 부작용을 경험할 가능성은 올라간다.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얘기다.

건강한 일반인 대상 효과 근거 거의 없어

영양 수액 주사는 성분 대부분이 포도당이나 식염수로 돼 있고 거기에 비타민 등 소량의 항산화 물질, 단백질, 미네랄이 포함돼 있다. 정맥이나 피하로 투여돼 효과가 빠른 게 장점이다. 피곤해서 수액 주사를 맞을 때 이런 특정 성분이 몸에서 일시적으로 염증 수치를 낮춰주기도 하지만 어떤 성분을 맞느냐와 무관하게 주사를 맞으면서 가만히 누워서 쉬는 행위 자체가 피로를 좋아지게 한다.

평소 음식이나 음료수로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하지 못해 만성적인 탈수로 피로가 누적된 이들과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수액 주사가 빠른 속도로 탈수 상태와 영양 불균형을 개선해 피로가 좋아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길어야 2~3일 지속하는 일시 효과에 불과하다.

배 교수는 “선행 연구에서 고용량 비타민C 주사의 피로 개선 효과를 평가했는데, 주사 후 2시간째 피로도는 비타민C군과 대조군(생리식염수 투여) 모두에서 유의하게 호전됐고 두 집단의 차이는 없었다. 주사 후 단기간에는 포함된 성분과 상관없이 수액을 통해 탈수 상태를 개선하는 것, 30분 동안 누워있는 행위, ‘약’이 몸에 투여됐다는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주관적 피로도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국제 학술지(Nutrients)에 발표된 메타(문헌)분석 논문에 의하면 비타민C·D나 티아민, 카르티닌, 마이어스칵테일, 싸이모신 등 영양 주사의 효과 연구는 암이나 만성 호흡기질환, 간·콩팥질환, 대사증후군, 섬유근육통, 다발성경화증 같은 특수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진행돼 ‘건강한 일반인’을 상대로 피로 개선 효과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된 것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피로의 원인은 과도한 육체·정신적 노동, 수면을 포함한 휴식이 불충분한 경우, 대부분의 급·만성 질환, 스트레스, 우울증 같은 기분장애, 영양 불균형, 체력 저하 등 다양하다. 또 한 사람에게 두어 가지 원인이 복합 작용하는 예도 있다. 이런 피로는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위험 신호다. 그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지 않고 수액 요법으로 일시적 피로 완화 효과만을 누리다 보면 오히려 기저질환의 악화를 놓칠 수 있다. 더구나 수액으로 쓰이는 포도당, 비타민C를 포함한 모든 성분은 크고 작은 부작용 가능성이 공존하므로 과도하게 수액 주사에 의존하는 경우 이상 반응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칵테일 요법, 드물지만 부작용 가능성

수액 주사에는 여러 영양 성분이 복합적으로 포함된 경우도 많다. 이른바 ‘칵테일 요법’이다. 한꺼번에 맞는 경우 중복 성분이 과다하게 투여될 위험이 있다. 비타민 B·C 등 수용성 비타민은 소변으로 바로 배출돼 큰 문제는 없지만 비타민A·D 같은 지용성과 몇몇 미네랄 등은 장기간 몸에 고농도로 축적돼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배 교수는 “수액 제조할 때 성분과 용량이 고정된 방식(fixed formula)도 있지만, 모발·혈액·소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으로 새롭게 혼합하는 경우도 있다. 고정 방식은 성분 간 충돌이 없도록 디자인돼 있겠지만 개인 맞춤형인 경우 조합되는 성분과 용량에 따라 수액 내 결정 형성, 부적절한 삼투압으로 인한 국소적 염증이나 통증 등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다만 이런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교육받고, 문제가 된 혼합법은 차후 개량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혼합으로 인한 부작용은 드물 것으로 생각된다”고 부연했다.

기저 질환자는 일부 수액 요법으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심부전 등 심장 기능 저하자, 고혈압·당뇨병 등 혈관질환자, 노인·어린이는 어떤 수액을 맞든 다량의 수분이 혈관으로 급격히 보충되는 경우 혈압 상승, 심장 부담 증가, 질환 악화 등의 위험이 따른다.

술 마신 다음 날 숙취 해소를 위해 수액 주사를 맞는 것도 권고되지 않는다. 알코올은 이뇨 작용으로 소변을 통한 수분 배출을 늘리고, 몸에서 대사 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과정에 다량의 수분과 에너지 손실을 유도해 탈수와 피로를 악화시킨다. 배 교수는 “숙취를 부르는 아세트알데히드 분해와 탈수 상태 개선을 위해 적절한 식사와 수분 섭취, 휴식(수면)으로 풀지 않고 단시간의 수액 요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효과가 빠를 순 있지만 그만큼 심혈관질환 등 부작용 발생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피로 회복을 위해선 수액 주사에 의존하기보다 평소 다양한 영양소와 비타민, 미네랄이 많이 든 신선한 채소·과일을 많이 섭취하고 물을 자주 마시며 충분한 휴식 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