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없었다”… 양승태 무죄 선고

입력 2024-01-27 04:04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농단 의혹이 처음 불거진지 약 7년, 양 전 대법원장이 기소된지 5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사법부 수장이 구속 상태로 기소된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에서 법원은 ‘재판 거래’ 의혹 등 주요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재판장 이종민)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6년간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해당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준 혐의, 헌법재판소 견제를 위해 헌재 파견 법관에게 내부 정보를 보고하도록 했다는 혐의 등을 받는다. 공소장에는 47개 범죄사실이 적혔고 직권남용 등 적용 혐의만 9개다. 하지만 1심은 재판 개입, 블랙리스트, 헌재 견제 등 3대 주요 쟁점을 전부 무죄 판결했다. 블랙리스트 관련 실무진에게 작성하도록 한 일부 보고서는 위법성이 인정되나 양 전 대법원장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사건 주심 대법관에게 ‘피해자들 청구를 기각하는 방향’의 의견을 전달한 혐의와 관련해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이고 논의 과정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대법원 심의관에게 작성하게 한 혐의에 대해서도 “대외관계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는 차원의 보고서일 뿐 재판에 개입해 영향을 미치려한 의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각종 행위를 재판 개입으로 보긴 어렵다는 판단이다.

오후 2시 시작된 선고는 이례적으로 4시간 넘게 진행돼 오후 6시 넘어 종료됐다. 중간에 10분간 휴정을 하기도 했다. 재판장이 선고 내용을 읽기 전 법대 위에 약 40㎝ 두께 서류를 올려두자 방청석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번 사건을 놓고 그간 정치권 등은 진영에 따라 첨예한 입장 차를 보였다. 진보 진영은 사법부 수뇌부가 상고법원 도입 등 숙원사업을 위해 정권 입맛에 맞는 재판 결과가 나오도록 개입해 일선 재판부의 독립성을 침해한 ‘사법농단 사태’라고 정의했다. 다른 한쪽은 문재인정부 적폐청산 기획에 검찰이 적극적으로 발 맞춰 사법부 독립성을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사법농단 의혹 ‘실무자’로 지목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다음 달 5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 사건으로 모두 14명의 법관이 기소됐지만 6명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유죄 확정 판결은 아직 없다. 앞서 무죄를 확정 받은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신광렬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전현직 법관들은 이날 방청석에서 양 전 대법원장 선고를 지켜봤다.

양한주 이형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