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림택권 (10) 예배 권리 주장하다 선임하사 화 돋워 몽둥이찜질

입력 2024-01-29 03:08
림택권(앞줄 가운데) 목사가 1957년 강원도 화천 국군 제1103야전공병단에서 복무하던 당시 사진.

그렇게 또다시 정식으로 한국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 어느 날, 미군 카투사 근무 군인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거 내가 미군 부대를 따라다니며 귀동냥으로 영어를 배웠다는 걸 알고 있는 한 대위님이 “택권이 너도 한번 지원해서 시험 쳐봐” 하며 제안했다.

이후 합격한 난 원래 보병대로 배치될 예정이었지만 카투사 시험에 합격했기에 카투사로 재배치될 날만 기다렸다. 그러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알고 보니 시험은 내가 쳤지만 그 시험 결과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소위 ‘빽’이 있다는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카투사로 가게 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남한에 연고 하나 없는 나로서는 별수가 없었다. 결국 부대 배치를 받지 못해 임시로 강원도 춘천 제2보충대로 발령이 났다. 10월 무렵이었던 당시 날씨가 제법 쌀쌀할 때였는데 부대 배치도 제대로 못 받아 동복조차 배급받지 못해 하복으로 그 추운 날을 이겨내야 했다. 당시를 생각하면 얼마나 서러운지 모른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곳은 교회밖에 없었다. 내가 있던 부대에는 본부 교회가 있었다.

한번은 부대에서 배추를 사 와 전 부대가 다 같이 김치를 담그게 됐다. 당시 나는 휴가증을 내주던, 나름대로 힘이 있던 행정과 서무계에서 막내로 근무했다. 김장은 보통 주일에 했다. 김치를 담그던 내 귓가에 본부 교회에서 예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니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김치를 담그는 우리를 감독하던 상사가 무서워 눈치만 봤다.

나이도 많고 수염이 많이 난 털보 상사님이었다. 눈치만 보며 김치를 담그다 슬쩍 보니 털보 상사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다’ 하고 몰래 교회로 달려갔다. 그렇게 간 교회는 왠지 모르게 포근하고 아늑했다. 덩달아 그렇게밖에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그런 마음을 모두 하나님께 내놓고 한참 예배를 드리는데 누군가 내 군복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뒤를 돌아보니 선임하사가 날 발견하고는 ‘뒤로 나와’ 하며 고갯짓을 했다. 난 ‘안 나가겠다’며 애써 그를 외면했다. 이 모습을 본 목사님은 그 선임하사에게 “예배는 마치고 가게 해요”라며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 군목님이 지금은 102세가 되셨다는 소식을 최근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찾아봬야 하는데 싶은 마음뿐이다.

아무튼 예배를 마치고 나가니 선임하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선임하사는 부대원 모두를 집합시킨 후 몽둥이 체벌을 가했다. 교회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부대원 모두에게 피해가 가자 나 역시 화가 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며 소리쳤다. 육군본부에도 아는 사람이 있으니 신고하겠다며 으름장도 놨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대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오히려 날아오는 건 더 가혹한 몽둥이질뿐이었다.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주일 아침이 밝았다. 내무반으로 들어온 선임하사가 날 보며 외쳤다. “림택권! 너 일요일인데 교회 안 가냐? 얼른 교회 가!”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