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논의에서 이른바 ‘철학자 왕’의 이론을 제시한다. 세속적 이해관계에 초연하고 이성적이며 지혜로운 판단을 하는 철학자 통치자와 통치자 그룹이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론’의 상당 부분이 그 통치자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하고 유지하고 교육해야 할지에 할애된다. 플라톤의 사상에서 통치자 후보는 장인이 기술을 배우는 것같이 통치술을 배우고, 그 과정을 통해 지혜롭고 자제력 있고 용감하며 정의로운 사람으로 빚어진다. 자기들끼리 일종의 가족 공동체로 살면서 35년 동안의 교육을 거쳐야 일정한 임무를 맡을 수 있고 50세가 돼야 지도자가 된다. 이때도 철학자 왕은 좋아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통치한다.
플라톤도 권력투쟁이 있는 현실세계에서 그런 이상적 체제를 구축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인근 국가인 시라쿠사의 참주였던 디오니시오스 2세를 잘 가르쳐서 철학자 왕으로 만들어보려 했다. 지혜자를 왕으로 만들 수 없으니 왕을 지혜자로 만들려던 시도는 그러나 실패했고, 결국 그의 이상적인 이론만 남았다. 플라톤은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무지한 민중에게 결정을 맡기면 투표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 같은 사고만 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바랐던 지혜로운 통치자를 기르는 교육은 혈통과 힘이 지배하는 왕정국가보다는 오늘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잘 응용할 수 있다. 35년짜리 배타적인 교육이야 불가능하지만 선거든 임명이든 지도자를 바꿀 수 있는 체제에서는 권력자를 선도하는 대신 지혜로운 사람을 길러 그 자리에 세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우리나라 정치나 모든 단위의 조직에서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제도는 없다.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것을 위한 준비 과정은 무시한다. 일단 자리에 오르면 왕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디오니시오스 2세처럼 배울 생각이 없어질 뿐 아니라 미래의 지도자가 될 사람을 키우기는커녕 경계한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모르는 영역에서 지도자가 되니 모두가 불행해진다.
플라톤의 이론을 거울삼아 미래 지도자를 키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각 기관 내의 교육 과정일 수 있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특정한 학위 과정일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아니라 특정한 지도자 교육을 받은 이들이 후보가 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낙하산이나 권력자와의 인맥은 무용해질 것이다. 이런 이상적인 시스템이 완성되려면 물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지도자의 자질을 장인의 기본기술처럼 기능적으로 정의하고 이해해야 한다. 지도자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해서 자기 역할을 위해 필요한 것 이상의 권력이나 권위를 가지지 않고 그 역할 수행에만 집중하게 해야 한다. 커리어의 끝에 지도자의 권력을 잡아야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도록 다른 역할을 통해서도 합당한 존중과 대우를 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야 모두가 지도자 교육을 받아야 하는 부담 없이 그 역할에 맞는 성품이나 잠재력을 가진 후보를 고를 수 있다.
플라톤의 예에서 보듯 이미 왕이 된 사람에게 기대를 품거나 실망하는 것은 부질없다.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오래 걸리더라도 각 수준의 조직에서 준비된 지도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해 사회에 공급할 방안을 궁리해야 한다. 지도자라면 응당 가졌어야 할 고민과 최소한의 배움이 없었던 이들이 갑자기 국정을 운영하고, 뜬금없이 나타난 자들이 커다란 자기 사진을 건물에 붙여대는 걸 보니 더 절박해지는 바람이다.
손화철(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