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극에 캐스팅된 건가요?… ‘코미디 소설가’가 던지는 질문

입력 2024-01-25 18:58

“나는 코미디를 쓴다”는 작가의 말이 소설 ‘캐스트’를 펼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첫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문학상을 받으며 ‘코미디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은 우희덕(44)의 두 번째 장편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안전망을 뒤집어쓴 벽걸이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좌우로 회전을 반복했다.” “마사이족 소년과 늙은 수사자의 10년 우정은 급조된 우정이었다. 둘은 촬영 날 처음 만난 사이였다. 자본주의 관계였다.” “W인력사무소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합니다. 단 하루도 지켜본 적 없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사훈을 표방하듯 액자에 걸려 있었다.” “편성 시간에 쫓겨 24시간 넘게 편집 작업을 하다가 인생이 통편집될 뻔한 피디도 있었다. 특종을 터트리기 전에 맹장을 터트렸다.”

이런 맹랑한 문장들이 속도감 있게 이어지며 이야기는 조금씩 윤곽을드러낸다. 거의 모든 문장이 영리한 유머를 탑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가볍지 않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방송국에 취직했으나 징계를 받아 한직으로 밀려난 젊은 PD 모진수와 그의 대학 방송국 친구로 아나운서를 꿈꾸지만 임시직을 전전하는 김금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아프고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우리는 비극에 캐스팅된 건가요?” 모진수가 선배 PD에게 던진 이 질문은 소설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비극을 연기하도록 캐스팅된 것이라면? 작가는 두 인물이 현실이 강요하는 배역에서 벗어나 본인이 원하는 자기 배역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가슴 찡하게 그려낸다.

“눈물 나게 웃긴 것도 코미디지만, 웃음이 날 정도로 슬픈 것도 코미디이다.” 작가의 말에 적힌 이 문장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싶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