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85)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으로 감형됐다. ‘박영수 특검팀’이 김 전 실장 등을 기소한 지 약 7년 만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2016년 말 불거진 국정농단 사건 중 마지막으로 남은 재판이다. 파기환송심 선고까지 내려지면서 국정농단 사건 사법 절차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서울고법 형사6-1부(재판장 원종찬)는 24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2년을, 조윤선(58) 전 문화체육부 장관에게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앞서 파기환송 전 2심은 김 전 실장에게 징역 4년, 조 전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나 예술가 등의 이름 및 지원 배제 사유를 정리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토록 한 혐의 등을 받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장시간 문화예술계에서 이념적 성향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차별적 인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율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의 정신적 재생산 기능이 저해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7년간 재판이 진행됐는데 특검 사임으로 인해 상당기간 재판이 지연된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 등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 등에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한 행위 등 일부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김 전 실장은 앞서 약 1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해 형이 남아 있지만, 재판부는 법정 구속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간 재판을 성실히 수행했고 고령인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선고 후 “상고하겠다”는 말을 세 차례 되풀이한 후 법정을 떠났다. 파기환송심 선고인 점을 감안할 때 재상고해도 형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조 전 장관은 앞서 미결수 신분으로 이미 1년2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2016년 10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 존재를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그해 12월 국정농단 특검 수사가 시작됐고, 2017년 2월 특검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을 구속 기소했다. 1~2심에서 잇따라 유죄가 선고됐고, 대법원은 2020년 1월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단계에서 박 전 특검이 ‘가짜 수산업자 금품수수’ 사건에 휘말려 2021년 7월 사임해 재판은 공전했다. 2022년 12월 특검법이 일부 개정돼 사건을 서울고검장이 이어받았고, 지난해 7월에야 심리가 재개됐다.
현재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됐던 51명 중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만 유일하게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국정농단 수사를 지휘했던 박 전 특검은 가짜 수산업자가 제공한 포르쉐 렌터카를 무상 이용한 혐의, 대장동 민간업자들로부터 개발사업 관련 청탁 대가로 거액을 약속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