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휴일만 보고 장사하는데…” 전통시장 상인들 울상

입력 2024-01-25 00:02 수정 2024-01-25 00:02
서울 영등포구의 한 전통시장이 24일 손님 없이 썰렁한 가운데 ‘점포정리’ 팻말이 물품 위에 붙어 있다. 정부는 지난 22일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폐지 방침을 밝혔다.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전통시장. 지난 22일 정부가 대형마트의 공휴일 의무휴업 규제 폐지 방침을 밝힌 뒤 이틀 만에 찾은 시장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점심시간이 가까운 오전 11시인데도 아예 문을 닫은 점포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39년간 그릇 가게를 운영한 이모(64)씨는 ‘점포 정리’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을 입구에 내걸고 있었다. 이씨는 “코로나19도 버텼지만 더는 힘들어 가게를 내놨다”고 말했다. 이씨는 가게 인수자가 없어 장사를 이어갈 생각이었지만 대형마트 규제가 풀린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이 시장에서 10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있다. 이씨는 “시장 상인들은 주말과 휴일만 보고 장사한다. 평일엔 찾는 사람이 아예 없다”며 “의무휴업 폐지는 남은 상인마저 시장을 떠나라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만난 전통시장 상인들은 의무휴업 폐지 방침에 불만을 토로했다. 2012년 제도가 시행됐지만 지난 12년간 골목상권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영등포 청과시장에서 40년째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최모(73)씨는 “대형마트가 쉬어도 젊은 사람들은 시장에 오지 않았다”며 “손님은 나이 든 사람들뿐인데 앞으로도 계속 올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근에서 33년간 농수산물을 판매해온 원춘화씨는 “다들 돈벌이는커녕 버티는 심정으로 눌러앉아 있다. 의무휴업 폐지는 시장 상인들의 호흡기를 떼는 것”이라고 했다.

대형마트 새벽 배송 허용 방침을 두고도 반발이 이어졌다. 30년 동안 양곡과 청과류 도소매업에 종사한 김상영(67)씨는 “아침에 물건을 떼올 때 보면 새벽 배송 트럭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대형마트는 돈이 더 많지 않나. 우리와 같은 소상공인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들도 정부가 상생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과일가게를 찾은 김모(66)씨는 “함께 살자고 의무휴업 제도를 시행해온 것 아니냐”며 “소비자가 조금 편해지자고 다 같이 죽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은 이미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전통시장 하루 평균 고객 수는 2019년 5413명에서 2022년 4536명으로 줄었다. 2022년 기준으로 전국 1388곳 전통시장에서 31만여명이 장사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생계가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이런 추세를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정부가 수많은 전통시장 소상공인의 생계가 달린 사안을 제대로 된 의견 수렴도 없이 결정했다”며 “상생을 위해 지금이라도 소상공인 목소리를 들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통시장의 쇠퇴는 불가피하지만 상인을 위한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며 “대형마트와 가까운 전통시장을 지원해 필수품 소비는 대형마트에서, 특화상품 구매나 각종 체험은 전통시장에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