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피해 배상책임 개연성만 입증하면 인정”

입력 2024-01-25 04:05
사진=뉴시스

2016년 충남 금산군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 피해 주민들이 사고 7년6개월여 만에 업체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게 됐다. 환경오염 피해자 측이 유해 물질로 피해를 봤다는 ‘개연성’만 증명해도 사업자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법리를 처음 제시한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황모씨 등 주민 19명이 반도체용 화학제품 제조업체인 램테크놀로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황씨 등은 금산에 있는 램테크놀로지 공장에서 2016년 6월 4일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 후 두통과 호흡기 질환, 수면장애, 안구 통증 등을 겪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들은 2017년 2월 램테크놀로지가 피해 주민 1명당 2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환경오염 피해 관련 기존 판례는 사고 업체에 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유해 물질이 배출돼 피해자에게 도달했고, 실제 피해로 이어졌다는 사실까지 피해자들이 증명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2016년 1월 시행된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 배상 가능성을 높였다. 이 법은 ‘시설이 환경오염 피해 발생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는 그 시설로 인해 환경오염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했다.

1심은 주민 피해를 인정해 램테크놀로지가 1명당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2심은 액수를 700만원으로 늘렸다. 2심은 “피해자들 소변검사에서 불산이 검출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체내 유입된 불화수소는 대부분 24시간 내 소변으로 체외 배출된다”며 “이런 사정만으로 사고와 피해자 증상 사이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램테크놀로지가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공장에서 누출된 불산은 기체 상태로 공기 중으로 확산했다가 지표면으로 낙하해 주민들에게 피해를 줬을 개연성이 상당하다”며 “주민들에게 공통 증상이 나타날 만한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그 인과관계를 부정할 사정이 없다”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