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의 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나 피해 상황을 함께 점검했다.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한 위원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발생한 초유의 당정 충돌사태 이틀 만이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화재 현장을 찾을 때 따로 이동했지만 상경할 때에는 대통령 전용열차 같은 칸에 탑승해 대화를 나눴다.
한 위원장은 서울역에 도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갈등의 조기 봉합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사과 여부와 김 여사의 사과를 촉구했던 김경율 비대위원 거취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이 재폭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1시30분 충남 서천군 서천읍의 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눴다. 오후 1시쯤 현장에 도착해 대기하던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향해 허리를 90도 가깝게 깊이 숙여 인사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어깨를 툭 치며 악수를 청했다. 두 사람은 가볍게 끌어안기도 했다. 이후 권혁민 충남소방본부장으로부터 피해 상황을 듣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김태흠 충남지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과 함께 걸으며 피해 현장을 둘러봤다. 윤 대통령은 상인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특별재난지역 선포 가능 여부를 즉시 검토하고, 혹시 어려울 경우에도 이에 준해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수산물특화시장 만남이 사전에 조율된 결과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22일 밤 화재 상황을 보고받으면서 “제수용품 들여놓은 것이 다 타버렸겠다”고 말했고, 23일 새벽 참모들에게 “내가 가봐야겠다”며 방문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서천 화재 현장을 따로 갈 경우 이상한 얘기가 돌 수 있어 함께 점검하는 것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여권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갈등이 조기 봉합 국면에 들어선 데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총선을 앞둔 시기에 갈등 국면이 계속되면 좋아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충돌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한 위원장은 서울역에 도착해 자신의 사퇴 요구와 관련한 질문에 “그런 말씀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라며 “그런 말씀보다는 민생 지원에 관한 얘기를 서로 잘 나눴다”고 답했다. 한 위원장은 김경율 비대위원 사퇴 여부를 논의했느냐는 취지의 물음에는 “그런 얘기는 서로 없었다”면서 “(윤 대통령이) 민생에 관한 여러 지원책 등 이런 부분에 대해 건설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고, 제가 잘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경원 이종선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