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 서남부 56억 전세사기 영장… 가중처벌법은 국회서 낮잠

입력 2024-01-22 04:04
지난해 12월 서울 지역 연립 및 다세대 주택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68.5%로 지난해 8월 한국부동산원이 관련 통계를 공개하기 시작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세사기 영향으로 전세 기피 현상이 확산하면서 전셋값이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21일 서울시내 한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경찰이 서울 서남부 일대에서 50억원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는 임대인의 신병확보에 나섰다. 계약 만료를 앞둔 세입자까지 고려하면 전체 피해 규모가 500억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세사기가 끊이지 않지만 솜방망이 처벌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최근 임대인 김모(56)씨에 대해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 2022년 11월쯤부터 세입자들에게 약 56억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서울 관악·구로·금천·동작구 일대에 다가구주택 10여채와 오피스텔 160여채를 보유 중이다. ‘빌라왕’ 등 전세사기 사건이 불거진 뒤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자 보증금 미반환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세입자들의 신고가 이어지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고의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사례가 없었고, 전세시장이 악화하면서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현재 김씨는 보증금을 돌려줄 만한 현금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과 대부업체에 갚아야 할 대출금과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체납액도 상당한 규모라고 한다.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김씨 보유 매물에는 공실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약기간이 남은 세입자도 안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씨와 계약을 맺은 전체 세입자 규모를 고려했을 때 피해 금액은 500억원 이상으로 불어날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계약이 만료된 세입자 A씨는 “5월부터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확실한 답을 듣지 못했다”며 “보증금 반환을 위해 임차권등기명령을 설정하고 계약해지 의사를 밝혔지만 한 푼도 받지 못해 갈 곳이 없어 그 집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피해 규모가 큰 전세사기 사건이라도 피의자를 가중처벌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개별 피해 금액이 5억원을 넘지 않아 가중처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10개월 동안 법안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은 “유명한 전세사기 사건도 극히 일부만 중형으로 처벌받고, 나머지는 실형도 선고받지 않고 있다”며 “가중처벌을 위한 법적 제도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