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분절화·통화 긴축·서비스업 성장’에 세계 교역 회복 부진

입력 2024-01-23 04:03

세계 교역의 황금기는 1990년대였다. 국제 분업구조가 확산하면서 교역은 세계 성장 대비 약 2배 속도로 빠르게 증가했다.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세계 교역은 구조적으로 둔화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투자 감소, 공급망 성숙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교역 흐름은 더 심상치 않다. 팬데믹 이후 3년간의 교역 탄성치(세계 교역 증가율/세계경장률)는 1.2로, 글로벌 금융위기(1.6) 때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는 교역 탄성치가 0.3으로 성장에 비해 세계 교역이 매우 부진했다. ‘탈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팬데믹 이후 글로벌 성장·교역에 대한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팬데믹 이후 세계 교역이 부진했던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첫째 원인은 전 세계적인 분절화의 심화다. 미·중 무역 갈등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친 영향으로 각국이 자국 중심 공급망 구축과 보호무역주의를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중심이던 분절화 움직임을 유럽과 러시아 등 글로벌 차원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같은 움직임은 세계 교역을 전반적으로 위축시켰을 뿐 아니라 미래 경제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워 교역 유발 효과가 큰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전 세계적인 통화 긴축 정책도 상품 중심 교역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국제 유가와 달러화의 동반 강세 현상도 원자재 비용 상승이나 신용 여건 악화로 이어지며 제조업 생산과 교역에 전반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세계 경제가 2022년 리오프닝 이후 상품교역이 아닌 서비스 부문에 기대 성장한 것도 한 요인이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상품 수요가 컸지만, 2022년 이후부터는 억눌렸던 서비스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경제 회복을 주도했고 상대적으로 상품교역은 위축됐다.

향후 세계 교역 관련 전망도 밝지 않다. 한은은 향후 수년간 세계 교역은 대체로 세계 성장률과 비슷하거나 다소 하회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분석했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성장세 약화와 글로벌 분절화 지속이 교역에 구조적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세계 교역 위축은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올해는 수출에 ‘청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글로벌 통화 긴축 완화와 인공지능(AI) 산업 성장, 친환경 전환 등 새로운 투자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점이 긍정 요인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반도체·전기차·이차전지 등 미래 핵심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점은 수출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이지만, 보호무역주의 심화와 친환경 전환 과정에서 주력 수출품에 대한 수요 감소 등 위험이 적지 않다.

결국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글로벌 분절화 리스크에 대한 대응과 기술 혁신·친환경 등 경제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일단 중국의 생산거점 역할이 축소되는 것에 따른 반사이익을 선점할 수 있도록 인도·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한은은 친환경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후 대응 기술력을 향상하는 데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국내 서비스산업 전반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