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팔·다리 못 써도 보행… 환자용 ‘아이언맨 로봇’은 진화 중

입력 2024-01-23 04:06

하반신 마비 환자도 걷게 해주는
하체 보조용 로봇 현재 가장 각광
전신마비, 뇌파·뇌전도 측정 작동
뇌컴퓨터 연결 기술 더 검증 필요

국내 기업 엔젤로보틱스가 개발한 ‘워크온슈트’의 모습. KAIST 제공

‘웨어러블 로봇’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입으면 힘이 세지는 착용형 로봇의 총칭이다. 그런데 웨어러블 로봇도 종류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근력 강화형 웨어러블 로봇’과 ‘환자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이 그것이다. 두 종류는 겉보기에 대단히 닮아 보이지만, 설계 사상 자체가 다르므로 만드는 방법도 상당히 달라진다. 근력 강화형 웨어러블 로봇은 영화를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일명 ‘아이언맨 로봇’과 결이 같다. 기본적으로 ‘팔다리가 모두 튼튼한 사람들’이 착용할 것으로 생각하고 개발한다. 건강한 사람을 ‘더 뛰어나고, 더 힘이 센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와 반대로 환자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은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한 로봇이다. 장애인 또는 노약자를 돕기 위해 만드는,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기술인 셈이다.

재활 목적 착용형 기계장치 개발 인기

‘환자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 중 현재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역시 ‘하체 보조용 로봇’일 것이다. 환자들의 하체 힘만 보조해도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선 하반신 마비 환자를 위한 웨어러블 로봇이 존재하는데, 이 과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이 ‘체중감지’ 기술이다. 사람은 왼쪽 발이 걸어 나갈 때는 저절로 오른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게 된다. 발만 계속 걸어 나가면 엉덩방아를 찧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이용해 로봇의 발 부분에 무게를 감지하는 ‘감압센서’를 넣고, 무게를 느낀 것과 반대쪽에 있는 발을 앞으로 움직여 주면 비록 완전한 하반신 마비 환자라 해도 로봇을 입고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 여기에 압력센서가 붙은 ‘전자목발’을 보조적으로 이용하면 어느 정도 혼자 보행이 가능해진다. 비슷한 방식의 로봇은 이스라엘 기업이 개발해 현재는 미국 법인에서 시판 중인 리워크(Rewalk)가 유명하다. 국내 기업 중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경철 교수팀과 공동 연구 중인 엔젤로보틱스가 개발한 ‘워크온슈트’가 있다. KAIST-엔젤로보틱스 팀은 이른바 장애인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사이배슬론’에서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기업 중에는 현대기아자동차 연구진이 환자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 ‘H-MEX’를 개발하고 있다.

최초의 웨어러블 로봇으로 알려진, 노인들을 위한 재활용 로봇 할(HAL)도 환자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의 대명사 격이다. 일본 기업 사이버다인이 개발했다. HAL은 주로 사용하는 체중감지 방식이 아닌, 근육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 즉 ‘근전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움직이려고 마음먹으면 근육에 전기 신호가 생겨나는데 이를 가로채는 것이다. 미약하더라도 근육의 기능이 살아있는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이 방식은 다리에 신경이 완전히 통하지 않는 신경마비 환자들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체 보조용 로봇이 대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진이 개발한 고령자 하체보조용 웨어러블 로봇 ‘문워크옴니’. KIST 제공

최근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운동보조용 웨어러블 로봇’ 개발이 인기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연구단 이종원 연구원팀은 초경량 근력 보조 웨어러블로봇 ‘문워크옴니(MOONWALK-Omni)’를 고령자에게 착용해 해발 604m에 달하는 북한산 영봉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11일 밝힌 바 있다. 기존의 근력 강화용 웨어러블 로봇의 기술을 간소화해 고령층이 편안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국기술교육대 연구진도 비슷한 기술을 적용한 ‘초경량 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을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선보이고 두 개 부문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현재 개발 중인 웨어러블 로봇은 주로 하체를 보조한다. 그렇다면 목 아랫부분이 완전히 감각이 없는 전신 마비 환자의 경우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신경계 문제로 한쪽 팔만 움직일 수 없는 환자는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운동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 경우에도 두 가지 해법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인간의 뇌파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흔히 뇌컴퓨터연결(BCI) 기술이라고 부른다. 실험적으로나마 환자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에 적용한 사례는 의외로 많다. 그중 2019년 10월에 발표된 프랑스 그르노블대 생물물리학과 연구진의 연구결과가 괄목할 만하다. 이 연구진은 전신 마비 환자용 외골격 로봇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는데, 환자가 입고 있는 웨어러블 로봇을 이용해 팔과 다리를 모두 생각만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 실험에 참여한 것은 ‘티보’라는 이름의 28세 청년이었는데, 건물 난간에서 12m 아래로 떨어져 척수를 다친 후 사지 마비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웨어러블 로봇 기술을 이용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실험에서 두 손과 팔 관절을 움직이고, 두 발로 걸어 축구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두개골과 뇌를 감싸고 있는 뇌막 사이에 전극을 심어 뇌를 직접 다치지 않고도 뇌파 신호를 더 정확하게 받는 방법을 개발했다.

국내에선 김래현 KIST 책임연구원팀이 BCI 기술을 이용한 하체 마비 환자용 외골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모자 형태의 EEG(뇌전도 측정장치)를 이용해 뇌 신호를 측정하는 방식이며, 압력센서가 붙은 전자목발을 보조적으로 사용한다. 환자 혼자서 어느 정도 보행도 가능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기술은 2020년 CES에서 소개돼 화제가 됐다.

미래에는 ‘신경계 연결기술’ 각광

BCI는 이론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환자에 적용하려면 충분히 신뢰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뇌파란 뇌 속 혈관에 피가 지나가고, 또 신경이 움직이면서 생겨나는 미세한 파장이다. 뇌파만을 분석해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나 의지를 완전히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다만 신체 신호 획득 방식과 신경계 연결방식 등 다양한 기술을 두루 활용해 환자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을 실용성 있는 수준까지 높여나간다면 관련 기술은 점점 더 진일보해 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환자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기술은 활용도가 매우 높다. 일부만 채용해도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 수 있다. 기존 의족, 의수 등의 성능을 크게 끌어올릴 수도 있고, 다양한 스포츠 의학 분야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환자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 기술이 완전한 대중화 단계까지 발전하려면 분명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술 발전 속도를 볼 때 가능성은 충분하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어디로든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는 세상도 조만간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전승민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