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9년 만에 임금 동결 카드를 꺼내며 재계에 긴축경영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재계 ‘맏형’인 삼성전자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임금을 줄이는 비상경영 행보를 보이면서 다른 대기업으로도 분위기가 번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전년보다 부진한 실적을 거둔 기업에선 임금 동결 또는 반납, 성과급 삭감이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삼성전자는 경계현 사장 주재로 연 긴급 임원 회의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낸 반도체 부문 임원의 올해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과 실적 부진을 겪었던 2015년에 이은 9년 만의 ‘한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연봉 동결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바로 보여주는 메시지”라며 “위기 극복을 위한 긴장감 유지에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지난 16일부터 임금 교섭을 시작한 삼성전자 노조는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2009년과 2015년 비상경영 당시에는 임원뿐 아니라 전 직원 임금을 모두 동결한 전례가 있어서다. 다만 당시엔 교섭할 노조가 없었던 만큼 회사 요구를 직원들이 수용했지만, 이번엔 거대 노조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어 최소한의 인상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재계 2위인 SK그룹에는 지난 연말 인사 때 이미 한파가 불어닥쳤다. 임원을 대폭 축소하는 조직 슬림화 작업에 이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나서 운영 예산 옥죄기가 한창이다. 한 계열사는 그동안 한도가 없던 운영 경비에 올해부터 상한선이 생겼고, 특정 부서에선 예산이 최대 5분의 1토막 난 곳도 있다고 한다. 불황의 터널로 들어선 배터리 계열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곳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다. 성과급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은지 오래다. 재계 관계자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최창원 부회장이 온 뒤로 성과급 지급 체계 등 모든 예산을 원점에서 들여다보고 재조정하겠다고 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CES 2024’ 출장 결재도 지출 과다를 이유로 대거 반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LG그룹은 LG전자가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등 분위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최대 라이벌 삼성전자의 동향에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삼성의 임금 동결은 올해 노사 임금 협상의 최대 변수가 됐다. 재계 관계자는 “LG전자는 호실적으로 분위기가 한결 낫지만 올해 어려운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임금을 대폭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황민혁 김민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