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 닥친 인구절벽, 이대로 두었다가는 미래 없다

입력 2024-01-19 04:07
게티이미지뱅크

점심시간은 늘 짧았다. 종이 울리면 친구들은 배를 채우기도 전에 곧장 운동장으로 향했다. 오후 수업 전에 짧게 축구 한판은 할 수 있다고 했다. 돌멩이로 어설프게 선을 그어 피구를 하고, 깨금발로 땅따먹기를 하기도 했다. 한바탕 땀 흘리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누군가는 운동선수의 꿈을 키웠다. 지금 3040들에겐 흔했던 학창시절의 풍경이다.

하지만 10년 뒤엔 사라질 모습이다. 운동장은 있는데 뛰어놀 아이가 없어서 운동을 못 한다. 한 반에 학생은 기껏해야 20명. 반 대항 축구도 겨우 하는 현실에선 운동선수의 길은 깜깜하기만 하다.

‘학령인구 감소’와 ‘스포츠의 위기’. 언뜻 두 키워드 사이의 연결고리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아직 손에 잡히는 현상이 없어서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스포츠계에서 마주하는 여러 문제의 배경으로 일제히 ‘저출생’을 꼽았다. 아직 눈앞에 닥치지 않았을 뿐 “그대로 두었다가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스포츠계 인구절벽 문제는 천천히 오는 게 아니라 한순간에 온다”고 18일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본격적으로 엘리트 스포츠에 입문할 시기인 초등학교 4~6학년 인구는 2005년에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을 걷고 있다. 2035년이 되면 2026년보다 초등 4~6학년생이 45.8%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대비 2021년 전국의 학생 선수는 23% 감소했다. 학교 운동부도 1000개 이상 줄었다.


정현우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원은 저출생으로 인한 스포츠의 위기를 ‘나비효과’라고 표현했다. 가장 먼저 인프라가 쪼그라든다.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는 수도권 지역 학교로 전학가야 운동을 할 수 있다 보니 선수들의 경제적 부담은 날로 커진다. 안 그래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데 돈까지 많이 드니 운동을 하고 싶어도 그 길에 오르기 어려워지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파이가 줄고 입문이 늦어지면 선수들의 기량 저하로 세대교체는 더뎌진다. 배구가 대표적이다. 최근 각종 국제 무대에서 거둔 처참한 성적 역시 ‘세대교체 실패’라는 말로 압축된다. 남자부도 뽑을 선수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2023-2024시즌 프로배구 남자 신인선수 드래프트 취업률은 47.6%로 밑바닥을 찍었다. 2005-2006시즌 종전 최저치(56.25%)보다도 한참 낮은 수치였다.

지난 16일 열린 2024 체육인대회에서도 ‘학령인구 감소’라는 키워드는 빠지지 않았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체육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며 “학교 운동부가 감소하면 궁극적으로 한국 체육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장상윤 사회수석이 대신 읽은 축사에서 “체육 교육 내실화 등을 통해 올해 학교체육 활성화의 전환점을 삼겠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유관 기관들이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종목 단체들이 학교 운동부에 지도자를 파견하고 유소년 교실을 마련하는 등 가장 먼저 움직였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교육부도 지원을 늘리고 정책을 신설하며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큰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인구 감소라는 큰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스포츠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스포츠를 접할 통로를 넓혀 엘리트 선수가 아니어도 ‘좋아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현재 초등학교 1~2학년은 ‘즐거운 생활’이라는 과목 아래 음악 미술 체육을 묶어 통합 과정을 이수할 뿐 정규 체육 수업을 받지 못한다. 최근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가 체육 교과 독립 편성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언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경계가 선명한 상태에선 지원을 늘려도 ‘겉핥기’에 그친다. 단순히 예산을 투입하는 데서 나아가 뿌리를 더 촘촘히 해야 한다. 인구 감소를 먼저 겪은 옆나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최의창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일본은 엘리트 그룹 뒤에 그보다 수십 배나 많은 각종 스포츠클럽에 아마추어로 하는 부카쓰(학생 동아리 활동)까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2001년 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를 비롯해 2015년 스포츠 정책을 총괄하는 스포츠청을 설립해 선수 육성을 체계화하고 과학적 투자를 지속해 왔다.

지역별 공공스포츠 시설은 영국을 모델로 삼을 수 있다. 영국은 회원제로 전국에 약 15만개의 스포츠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주거지 인근 10분 거리마다 클럽이 있는 셈으로, 클럽당 114명의 성인 회원이 있다. 이 가운데 주당 최소 150분 이상 신체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61.4%에 달한다. 2013년부터는 정부 주도 아래 5000개 이상의 위성 클럽을 두고 학교체육과 지역사회 스포츠를 연계하겠다는 계획도 실현 중이다. 현재 226개의 공공스포츠클럽만 두고 있는 한국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