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공천관리위원회를 출범시키고 4·10 총선에 출마할 국회의원 후보자를 가리는 공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야의 현역 의원 물갈이 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대 관심사는 현역 의원들의 ‘공천 배제’(컷오프) 여부다. 현역에게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컷오프는 당사자에게는 정치적 사망 선고지만 당 입장에선 새로운 인물을 영입할 수 있는 기회다.
조직과 선거 경험이 있는 현역 의원은 정치 신인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서 경선을 치를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세대교체를 위해 현역이 일정 부분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현역 의원들의 컷오프를 인적 쇄신으로 포장하는 이유다.
이번 총선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지난 16일 당무감사 결과나 기여도 등을 반영한 현역 교체지수를 기준으로 하위 10%(7명)를 컷오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도 컷오프 규정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의 평가를 바탕으로 하위 20% 의원들에 대해서는 경선 득표수 감산을 예고했다. 그러나 인위적인 컷오프가 총선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상대 계파 죽이기’ 수단 사용되기도
역대 총선을 보면 세대교체 등을 명분 삼아 다선 의원을 우선 컷오프하거나 당내 갈등으로 상대 계파의 수장을 쳐내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컷오프된 의원들의 무소속 출마와 당적 변경도 종종 빚어졌다.
2008년 18대 총선과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전신 보수 정당에서는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간 계파 갈등에 의한 컷오프가 속출했다. 이명박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는 공천 주도권을 쥔 친이계 주도로 김무성·서청원·홍사덕·이규택 등 친박 중진이 줄줄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컷오프된 친박 인사들은 ‘친박연대’로 당적을 옮기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들을 꺾고 원내에 입성했다. 친이계는 ‘계파 공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친이계 5선인 박희태 의원을 희생시키기도 했다.
그로부터 4년 뒤 19대 총선 공천에서는 친이계 인사들이 공천 학살의 타깃이 됐다. 당시 정홍원 공관위원장은 현역 의원 25% 컷오프 룰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안상수 전 대표를 비롯해 진수희·강승규·진성호 의원 등 친이계 의원이 대거 공천에서 배제됐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친박계를 중심으로 비박계 의원들에 대한 컷오프가 이어졌다. 비박계 중진 주호영·진영 의원 등이 컷오프됐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힌 유승민 의원의 측근들도 컷오프 대상에 올랐다. 김무성 당시 대표에 대한 막말 논란을 빚었던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도 공천받지 못했다. 다만 주호영·진영·윤상현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윤 의원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컷오프됐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국민의힘으로 복귀했다.
측근 배제 효과 속 갈등 확산 비판도
가장 모범적인 컷오프 사례로 평가받는 것은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 케이스다.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의 고질병으로 지목된 강성·운동권 색채를 빼기 위해 친노(친노무현)계 좌장 이해찬 의원과 강경파 정청래 의원을 공천 배제했다. 5선 문희상 의원도 컷오프 대상에 올랐다. 민주당은 당시 선거에서 새누리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 됐다. 다만 이때 컷오프된 이해찬·문희상 두 중진 의원 역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18·19대 총선 민주당 공천에서는 개혁 공천을 빌미로 옛 동교동계 인사들이 컷오프 대상이 됐다. 18대 총선에서는 박지원·김홍업(김대중 대통령 차남) 의원이, 19대 총선에서는 한광옥 의원이 각각 컷오프됐다. 18대 총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과 측근이 공천에서 탈락하자 “당이 억울하게 조작된 일로 희생된 사람의 한을 풀어줄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키운 민주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컷오프된 상도동계 김무성 의원 선거사무실을 찾아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권을 쥔 세력이 컷오프를 정치적 무기로 악용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 4명만 컷오프했다.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던 민병두 의원과 택지정보 사전 유출 논란을 빚은 신창현 의원 등 물의를 일으킨 의원이 대상이 됐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이주영·김재경·권성동·강석호 의원 등 중진들을 대거 컷오프했다. 현역 교체율이 43.5%에 달했지만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컷오프를 수단으로 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선거 승리를 보장하는 만능 무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평가가 그때 나왔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19일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 상당수를 인위적으로 컷오프하는 건 이제 승리 공식도 아니고 정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도 “총선 공천을 계기로 하는 인적 쇄신이 불가피한 측면이 분명 있다”면서도 “그 과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면서 공정해야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선 구자창 신용일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