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중에 말 숨진 ‘태종 이방원’… 제작진 벌금 1000만원씩

입력 2024-01-18 04:07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낙마 장면 촬영에 동원된 은퇴 경주마 '까미'가 다리를 묶인 채 머리부터 넘어지고 있다. 까미는 이 촬영 이후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 KBS 방송화면 캡처

촬영 중 말을 학대해 사망하게 한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제작진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8단독 전범식 판사는 17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KBS PD 김모씨, 무술감독 홍모씨, 드라마 승마팀장 이모씨에게 각각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양벌규정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KBS에 대해선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김씨 등은 2021년 11월 2일 드라마 속 낙마 장면을 촬영하던 중 말 앞다리에 밧줄을 묶어 일부러 넘어지게 한 뒤 말이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않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제의 촬영 장면은 2022년 1월 방송된 ‘태종 이방원’ 7회에 담겼는데, 촬영 닷새 후 말이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김씨 등은 재판 과정에서 “고의로 상해를 입히는 등 동물 학대를 한 것은 아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전 판사는 “촬영 장면을 보면 말이 로프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빠른 속도로 달리다 고꾸라지며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넘어지는 훈련을 받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말이 받았을 고통, 스트레스, 공포를 종합하면 피고인들의 행위는 동물보호법에서 규정한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말이 넘어지지 않고 낙마 장면을 촬영하는 방법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스턴트맨이 낙마하거나 유사 모형을 제작해 사용하고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표현의 사실성이 떨어진다거나 제작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정 등으로 피고인들이 말을 넘어뜨리는 방법을 선택한 것에 회피 가능성이 없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말에게 고통을 가하고 상해를 입게 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용인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 판사는 “피고인들이 기본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있고 관행적 촬영 방법을 답습해 범행에 이른 점, 사건 이후 KBS 주관 아래 동물 촬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시행한 점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앞서 검찰은 김씨 등 3명에게 각각 징역 6개월을 구형하고, KBS에는 벌금 500 만원을 구형했다.

김재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