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보좌역된 은둔 자립청년… “청년정책 디딤돌 놓겠다”

입력 2024-01-18 00:03 수정 2024-01-21 14:03
캠페인 2년 차를 시작하며

‘자립준비청년에 희망디딤돌을’ 캠페인이 2년째를 맞아 더 알차집니다. 심리·경제적 홀로서기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합니다. 자립준비청년의 정서적 동행자인 ‘디딤돌가족’에 캠페인을 공동 진행하는 삼성 임직원, 일반인(교회 신도) 외에 코칭 전문 강사진이 멘토로 참여해 전문성을 높일 계획입니다. 디딤돌가족 2기는 지난해 1기보다 40가족 늘어난 100가족으로 운영합니다. 온라인 광고·홍보 실무, 중장비 운전기능사, 애견 미용사, 네일아트 미용사 등을 추가한 ‘삼성 희망디딤돌2.0 직무교육’과 자립준비청년 보금자리인 삼성희망디딤돌센터 개소식 등의 생생한 현장도 지면, 온라인, 영상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자립준비청년의 꿈과 고민에 대한 솔직한 얘기, 이들의 후원자 사연도 연재합니다. 정치권, 공공기관, 교회, 학계, 시민사회(NGO), 기업의 주요 인사와 전문가로 구성한 자문위원단은 올해도 활약할 계획입니다.

자립준비청년 출신으로 보건복지부 장관 청년보좌역에 선발된 박정재씨가 17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연간 2000~3000명의 청년이 보육시설을 떠나 자립에 나선다. 부모와 가족 도움 없이 보호 종료가 되면 이들은 혹독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최근에는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큰 꿈을 품고 정치를 시작하는 이들도 나왔다. 역경을 딛고 꿈을 찾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은 정부 정책과 민간 지원이 점점 확대된 영향이 크다.

보건복지부 장관 청년보좌역에 선발된 박정재(28)씨 역시 선한 정책의 힘을 믿는다. 박 보좌역은 17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부의 청년 지원에 힘입어 다양한 인적자원이 나오고 있다”며 “그중 하나가 바로 내가 맡은 청년보좌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해서 꼭 청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며 “자립준비청년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의 위기 청년을 위한 정책 디딤돌을 놓겠다”고 덧붙였다.

박 보좌역은 세 살 때 충남 천안의 한 시설에 맡겨졌다. 시설에서 지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립을 선택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원하는 원룸 임대주택과 500만원을 쥐고 홀로 세상에 나왔다. 그는 “후원금이나 용돈 통장을 받았지만,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몰라 돈이 줄어들수록 불안했다”며 “주유소와 고깃집 등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하다 보니 학교 과제도 놓치고 공부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애써도 꿈은 멀게만 느껴졌다. 마음도 함께 지쳐갔다. 박 보좌역은 “그 무렵 공허함이 몰려왔다”며 “학업을 소홀히 하게 됐고, 결국 대학 생활도 적응하지 못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됐다”고 회상했다. 게임을 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고립·은둔 생활이 6개월 넘게 이어졌다. 경찰을 꿈꾸며 진학했던 대학에서도 결국 제적당했다.

그가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었던 건 스스로 끊임없이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혼자 묻고 또 물었다.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1년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공사장에서 타일 붙이는 일부터 새벽 맥줏집 청소까지 다했다.

권현구 기자

박정재 보좌역은 귀국 후 2년간 아파트 경비원 일을 하면서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2020년 한 아동시설 생활지도원을 맡게 됐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후배들을 만났다. 그는 “시설에서는 시키는 대로만 살다 보니 내가 스스로 뭘 해야 할지, 어떤 걸 준비해야 할지 막연할 때가 많았는데 후배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며 “이들에게 여러 길을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작은 관심이라도 곁에서 지지해주면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을 직접 느꼈다고 한다.

그는 삼성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삼성 희망디딤돌 충남센터’에서 아동권리보장원이 운영하는 자조 모임 ‘바람개비 서포터즈’ 충남권역장을 맡았다. 강연도 하고, 시설에 있는 후배들과 선배 자립준비청년들을 연결해 일대일 멘토링을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후배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게 됐다. 박 보좌역은 “자립준비청년들은 진로 탐색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고 정보를 어디서 얻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내가 그랬듯이, 후배들이 헤매는 것을 보면서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 지원 모범사례로 뽑혀 지자체장 명의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보건복지부 장관 청년정책보좌역 선발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청년보좌역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으로 도입한 제도로, 각 중앙부처 정책 설계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는 17대 1의 경쟁을 뚫고 최종 선발됐다.

선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쟁쟁한 동료에 비해 내 스펙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만의 경험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청년 정책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유년 시절을 보낸 청년들에게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수행하다 보면 분명한 기회가 온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박 보좌역은 앞으로 복지부 청년 정책에 대한 정책 홍보와 제안 등을 수행한다. 정책 혜택을 받다가 반대로 다른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맡게 된 소감을 물었다. 박 보좌역은 “수혜자 처지에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막상 정책 하나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배우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정책 하나를 도입하려면 상충하는 제도를 점검하고 법적 기반을 다져야 한다. 또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 세밀하게 검토하고 시스템도 구축해야 하는 과정이 뒤따른다”면서 “많이 공부하면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자립준비청년과 고립·은둔청년 당사자였고 또 사회복지사로 서비스 전달자의 경험이 있는 만큼 다양한 관점에서 정책을 바라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보좌역은 “최근에는 가족돌봄청년이나 고립·은둔청년과 같은 다양한 위기 청년들이 복지 제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내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들을 바라보면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도움을 주는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정책 분야로 그는 다양한 형태의 위기 청년을 발굴해 지원하는 정책을 꼽았다. 박 보좌역은 “청년 문제 대부분은 유년기 영향을 받아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가정의 역할을 국가가 보완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특히 성장 배경에 무관하게 차이를 극복해주는 게 좋은 청년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청년 마음 건강이 그의 관심 분야다. 그는 “위기 청년의 경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심리적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 정책이 많은데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봤기 때문에 더 심층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시설생활을 하는 보호아동은 한 사람의 심리 상태가 다른 이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집중 심리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미 잘 설계된 정책을 홍보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보좌역은 국민일보와 삼성이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전개하고 있는 ‘자립준비청년에 희망디딤돌을’ 캠페인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청년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고 언론과 민간이 이들에게 투자한다는 건 국가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평가하며 “후배들을 위해 내 경험을 공유해주고 싶다.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