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작은 교회선 사택 꿈도 못꿔… 사례비 최저임금 못 미쳐

입력 2024-01-18 03:01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강북구 A교회에서 시무하는 부교역자 신영민(가명·45) 목사는 2년 넘게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아내와 자녀는 교회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30분 거리의 경기도 한 도시에 살고 있고 자신은 본가가 있는 도봉구에서 생활 중이다. 신 목사는 17일 “새벽기도와 철야 예배에 참석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아빠 없이 고생하는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털어놨다.

20년 가까이 부교역자로만 살아온 터라 모아둔 돈도 많지 않은 그에게 사택 마련에 쓰라며 교회가 제시한 보증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신 목사는 “4000만원이면 교회 근처 반지하방 얻기도 어렵다”며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사택을 제공하는 교회도 찾아봤지만, 서울 안에는 찾기가 어렵고 제 나이를 생각하면 새로운 사역지를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밝혔다.

‘악화일로’ 부교역자 처우

일선 교회에서 사역하는 부교역자의 처우가 날로 열악해지고 있다. 과중한 업무에 적은 사례비도 애로사항이지만 의식주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거처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한 최소요건조차 충족되기 힘든 ‘신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한국교회 부목사 55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22년)에 따르면 부목사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9.8시간, 일주일에 평균 6일 가까이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목사 생활의 힘든 점으로는 ‘업무량이 너무 많음’(47%)이 가장 많았고 ‘적은 사례비’(46%)가 뒤를 이었다. 부목사의 월평균 사례비는 260만원이었다. 한국교회의 80%가 넘는 교인 수 100명 미만 교회는 평균 177만원으로 조사됐다. 2024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월급(약 206만원)의 86%수준이다. 목회적 사명감 만으로 감내하기엔 현실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다.

신학교 홈페이지 등에 올라온 구인공고를 보면 부교역자 처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복지혜택 항목은 도서·통신비 지원 정도가 대부분이고, ‘2대보험 절반 지원’ 정도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눈에 띄는 항목은 ‘40세 이하만 지원’, ‘85년생 이하만 지원’ 등 연령제한 조건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역 선택의 폭까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택 실종’ 사태 왜

충격적인 건 한국교회 부교역자 복지의 대표 격인 ‘사택 제공’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 교회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이다. 사택 실종의 주 원인은 주택 가격의 상승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0년 전보다 7억원 가까이 치솟았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평균 가격 상승분(2억원)의 3.5배에 달한다.

현행 세법에서 부교역자 사택을 교회의 직접 고유목적에 사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교회 사택 보유로 인해 종합부동산세를 납부한 교회들도 있어 교회의 사택 보유는 갈수록 줄어들 전망이다.

개인→가족 ‘도미노’ 생활고

그러나 이런 고민도 중대형 교회에서나 오갈 수 있는 얘기다. 개척·미자립교회의 경우 사택은커녕 기본적인 복지혜택조차 꿈도 꾸지 못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장 오정호 목사) 교단이 1095개 소속 교회를 대상으로 한 사택 보유 여부 조사(2022년)에서 부교역자 자체가 없는 교회는 42.6%로 집계됐다.

부교역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사역자 개인의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 목사는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배우자가 생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고 육아 공백을 메우려고 조부모들이 기약 없이 헌신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