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현장에서 생기는 문제 ‘우정 공동체’로 풀 수 있다

입력 2024-01-18 03:07
선교 지향 경제공동체인 이롬의 중보자로 선발된 100명의 임직원들이 지난해 7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빌리온 소울 하비스트 국제대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황성주 회장 제공

선교 현장을 다니다 보면 가장 마음 아픈 일이 선교사들과의 관계, 선교사와 현지 사역자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배신당했다’는 표현을 많이 듣는데 이는 지나친 기대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기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치료의 대상이다.

사람에게 기대하다 보면 종종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주님께 기대하면 은혜를 받는다. 사람과 부딪치면 깨지고 망가지게 돼 있다. 반면 하나님과 부딪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상대방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채권자 의식’의 표현이며 상대방을 은근히 채무자로 만든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부채 의식은 작동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자녀들을 채무자로 만들기에 매우 불편한 관계를 만들게 돼 있다.

사역자들 간에도 이런 의식이 작동하면 부채 관계가 형성된다. 특히 우정이 작동하기 전에 사역의 고용 관계가 먼저 형성되면 ‘고용주-고용인’이라는 계급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마우리치오 마자라토가 말한 ‘부채 인간’이 탄생한다. 채무자는 항상 빚을 지고 살 수 없으므로 기회가 생기면 결국 채권자를 떠나가게 되고 이를 ‘배신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우정의 공동체 울타리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사랑을 우정으로 정의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3~15)

그런데 예수님은 왜 본문 앞절에서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라고 아가페 사랑을 명령하면서 필레오 사랑(우정)을 예찬하고 있을까. 아가페 사랑은 십자가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으로 천상에 속한다. 그래서 지상에서 최고의 사랑인 필레오 사랑을 먼저 추구하라는 것이다. 즉 필레오의 기초 위에서 아가페를 지향하라는 뜻이다.

지난 2018년 8월 국제사랑의봉사단에 참여한 이롬 임직원들이 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나기에 앞서 인천공항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황성주 회장 제공

크리스천 최고의 지성 C S 루이스는 ‘4가지 사랑’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다. 이중 스톨게 사랑은 혈연관계에서 비롯된 운명적 사랑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대표적이다. 이는 숭고하긴 하나 독점적 측면이 강해 자기 자식만 사랑한다는 한계가 있다. 에로스 사랑은 헌신적이고 초월적이나 조건에 의해 좌우되고 빨리 식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지상에선 필레오 사랑, 즉 우정이 최고의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최고의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먼저 친구가 돼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직장에서도 그리고 사역의 현장에서도 먼저 우정을 바탕으로 친구가 되면 아름다운 관계가 형성된다. 복음을 전할 때도 먼저 친구가 되면 진정성이 보이기에 쉽게 전도할 수 있다. 먼저 우정의 꽃을 피우면 만사가 형통해진다. 우정은 자연성을 기초로 하며 부채의식이 없는 유일한 사랑이다. 우정의 분위기는 모닥불을 배경으로 커피 한 잔의 대화, 편한 복장에 부드러운 실내화, 잔디밭에서 뒹구는 강아지의 이미지이다.

사회 시스템에서도 증여나 구제는 인격적 불평등성으로 부채 인간을 만든다. 그리고 복지제도는 비인격적 평등성을 강조하지만 결국 나태해지고 중독 현상이 생긴다. 반면 우정은 인격적 평등성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창출한다. 즉 채권자와 채무자, 즉 부채 인간이 없는 진정한 공동체는 우정의 공동체이다. 마르틴 부버가 외쳤던 ‘나와 너’라는 인격적 관계, 인간을 목적이나 수단으로 삼지 않은 공동체는 곧 우정의 공동체인 것이다.

지금 총체적 세속성이 붙들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상은 부채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생계자산과 문화생활을 누리는 여유 자산을 넘어 평생 쓰고도 남는 잉여자산과 신용자산을 추구하라며 탐욕과 이기심을 부추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새로운 계층들 사이에는 갈등과 충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공동체의 기능은 부채를 상쇄시키는 것이다. 즉 성경적인 세계관을 기초로 한 우정의 공동체를 통해 맑은 샘물처럼 세상의 목마름을 해결하고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가 섬기고 있는 사랑의공동체는 20년 전 충남 서산에 꿈의 학교라는 선교 지향 교육 공동체를 출범시킨 바 있고 그 아름다운 열매들을 맛보고 있다. 올해 국제사랑의봉사단은 강원도 횡성의 55개 동 규모의 펜션 단지를 인수하면서 선교를 지향하는 치유 및 경제공동체를 준비하고 있다. 비즈니스 조직이 유기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공 여부가 아닌 순종 여부를 따지는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깃발을 들고 달려갈 뿐이다. 그것이 평생 추구했던 사랑의 혁명이기에.

황성주 이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