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인천비즈니스고 핸드볼부 신입생 박수연(가명·16)양은 올해 입학을 앞두고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박양은 당초 진학하려던 인천여고 핸드볼부가 지난해 문을 닫으면서 갑작스레 행선지를 잃었다. 고민 끝에 한 학년 위 선배들을 따라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40분 거리인 인천비즈니스고에 입학 신청서를 냈다. 지난해 12월부터 훈련에 참가하고 있지만 적응부터 쉽지가 않았다.
선수가 없다는 게 핸드볼부를 없앤 원인이었다. 해체 직전 엔트리 구성이 어려웠던 선배들은 전국 대회에서 교체 선수 하나 없이 뛰었다. 7명이 뛰는 핸드볼에 5명으로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부상자가 생겨도 대체할 자원이 없으니 성적은 물론이고 출전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다. 전국체전을 비롯한 각종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던 인천여고 핸드볼부는 지난해 결국 문을 닫는 수순을 밟았다.
인천여고는 한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붙박이 에이스 류은희(34·헝가리 교리)의 모교이기도 하다. 류은희는 16일 국민일보에 “학교의 전통이 한순간에 없어진다는 게 아쉽긴 하다”면서도 “제가 학교에 다녔을 때도 선수가 부족해 자체 훈련이 어려웠다. 근처 중학교랑 같이 훈련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그가 고교 팀에 몸담았던 2009년에도 열악하긴 했지만 지금은 당시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스포츠지원포털에 따르면 2009년 전국 핸드볼 학교운동부 소속 학생 선수는 2333명이었다가 지난해 1469명으로 줄었다. 이는 한국 저출생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인천의 출생아 수는 2만4379명이었으나, 지난해 1만4464명까지 줄었다. 같은 기간 44만4849명이던 전국 출생아 수도 24만9186명으로 떨어졌다.
대한핸드볼협회 홈페이지를 보면 인천여고뿐 아니라 경안여고, 동방고, 부산백양고, 신갈고 등 소속 선수가 없는 학교가 많다. 정신여고와 삼척여고도 등록 선수가 각각 2명, 4명으로 집계됐다. 국가대표 출신 장리라 대한핸드볼협회 부회장은 “저출생으로 핸드볼 선수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집마다 아이가 1명밖에 없으니 운동시키려는 부모도 없다”고 말했다.
학교 운동부 하나가 사라지면 그 지역 일대에도 큰 파장이 인다. 올해 인천비즈니스고 핸드볼부는 총 15명으로 신입생 절반이 원래는 인천여고로 진학해야 하는 만성중 출신이다. 인천 지역 핸드볼 학생 선수들이 전부 인천비즈니스고에 몰리면서 주전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다. 중학교 시절 주장 완장까지 차며 나름 실력을 인정받았던 박양은 지금은 벤치 신세를 면하면 다행이다.
졸지에 선수가 많아진 인천비즈니스고도 마냥 웃을 순 없다. 그만큼 운영에 변수가 많아져서다. 김진순 인천비즈니스고 핸드볼부 감독은 한때 인력난 속에 졸업생 선수들까지 동원해 훈련을 진행하거나 운동을 그만둔 선수들 이름까지 등록해 대회에 나서곤 했다. 지금은 정반대의 고민을 떠안았다. 김 감독은 “내후년 기준으로 벤치에 16명이나 앉게 된다”며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아지면 타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와 다시 이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생 선수 육성이 어려워지면 성인 무대까지 흔들린다. 벌써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신인드래프트 신청자는 계속 줄고 있다. 2013년 첫 드래프트 이후 많게는 신인 선수 41명(2015년)이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2023년 신청자는 19명으로 반토막났다.
비인기 종목일수록 위기는 크게 다가온다. 원래도 다른 종목에 비해 기반이 열악했던 핸드볼은 저출생 국면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종목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졌다. 이계청 삼척시청 감독은 “이제 벤치만 봐도 안다”며 “고교 팀 경기를 보러 가면 최소 12명이 있어야 하는 경기에 뛰는 선수 말고 한두 명만 교체 선수로 있는 팀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선수층이 얇아지면 기량 저하로 직결된다. 핸드볼 입문 시기가 늦어진 데다 학교 운동부에서도 인원 부족으로 훈련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탓에 실업팀이나 대표팀에 와서도 힘든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한다. 이 감독은 “인원이 적다 보니 오히려 선수들의 경기력이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떨어지는 게 보인다”며 “드래프트 후 1~3년 차 선수들이 매년 계속 교체되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기량 부족으로 노장들이 오래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짚었다.
핸드볼 ‘아시아 절대 1강’이란 타이틀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지난 10월 막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한국 여자 핸드볼팀은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리드를 잡지 못하고 10점 차로 완패했다. 지난달 어린 선수들을 위주로 엔트리를 대거 변동해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대표팀은 최종 22위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은 현재 한국 구기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냈지만 ‘우생순’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이누리 권중혁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