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경찰 고위 간부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경찰 서열 3위 계급인 치안감 출신 출마가 두드러진다. 이들 다수는 치안감으로 승진한 이후 시도청장으로 근무했던 지역에 출마한다. ‘정치적 중립성 훼손’ 논란에서 경찰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총선 출마를 선언했거나 예정된 경찰 간부 출신 출마자는 14명이다. 정치권 입성 도전이 처음인 인사는 8명이다. 현재까지 국민의힘 소속으로 5명,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3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경찰 치안감 계급 출신 출마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정용근(58·경찰대 3기) 전 충북청장, 윤소식(58·경찰대 5기) 전 대전청장, 고기철(62·간부후보생 38기) 전 제주청장, 이상률(57·경찰대 4기) 전 경남청장, 노승일(59·경찰대 3기) 전 충북청장 등이다.
특이한 대목은 치안감 승진 2년이 지난 뒤 대부분 출마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치안감 계급정년은 4년인데, 정년이 반환점을 돌고 나서 퇴직 후 정계로 나서는 것이다. 대전 유성갑에 출마하는 윤소식 전 대전청장은 2021년 2월 치안감을 달고 같은 해 대전청장으로 내정됐다. 그는 경찰청 교통국장으로 전보된 지 약 7개월 만인 지난해 8월 명예퇴직했다.
예비후보 등록 마감일 하루 전인 지난 10일 등록한 이상률 전 경남청장도 치안감 승진 2년 만에 경찰을 떠났다. 제주 서귀포에 출마하는 고기철 전 제주청장도 치안감 승진 2년 만에 퇴직한 뒤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영입 인재로 발탁되면서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찰 고위 간부의 이런 행보에 경찰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한 경찰은 “정년 반만 채우고 정계로 진출하는 게 공식처럼 돼버렸다. 자신이 향후 출마할 생각이 있는 곳에서 근무한다면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일할 수 있겠느냐”며 “선심성·포퓰리즘적 행정을 펼치기 쉽고 더 심각한 경우에는 사건 편의를 봐주는 일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찰도 “과거 출마를 시도했던 한 경찰 간부는 표심을 의식해 지역경제가 위축된다면서 음주단속을 줄이라고 했다고 한다”며 “이 같은 문제는 경찰, 검사, 지자체 공무원 등 정계 진출을 꿈꾸는 공무원 모두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고위 간부들의 도전을 반기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경찰은 “제도권 정치에서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경찰 출신 국회의원이 많아지는 게 조직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며 “보통 근무지가 고향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근무지에 출마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직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기관의 간부들이 오히려 공직을 발판 삼아 정치권으로 이동하는 일이 잦아지는 현상에 대해 우려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회에 대한 공헌보다는 개인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성향이 커졌다”며 “공직자였을 때의 주장, 행보들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가현 나경연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