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 기업 자금난… 최종단계서 난관
연구팀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
정부 연구비 지원사업 신청도 고배
췌도 제공 돼지 8마리 중 2마리 폐사
형질전환한 돼지 심장 이식한 해외
韓 무균돼지 췌도이식 가치 주목
연구팀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
정부 연구비 지원사업 신청도 고배
췌도 제공 돼지 8마리 중 2마리 폐사
형질전환한 돼지 심장 이식한 해외
韓 무균돼지 췌도이식 가치 주목
최근 1형 당뇨병(옛 소아당뇨) 자녀를 둔 가족의 비극이 알려지면서 중증 환자들의 고충을 풀어줄 정책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아울러 1형 당뇨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중 하나가 돼지의 췌도를 1형 당뇨 환자에게 옮겨심는 ‘이종(異種) 이식’이다. 췌도는 췌장 내 인슐린 분비 조직으로, 1형 당뇨는 이 췌도가 망가져 인슐린이 거의 분비되지 않아 발생한다. 그런데 국내 최초로 준비돼온 무균돼지-사람 간 췌도이식 임상시험이 중단 위기에 처했다. 임상시험 의뢰자인 바이오기업의 자금난으로 실용화를 가늠할 최종 단계에서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대학병원 공동 연구팀은 임상 참여 환자를 선별하는 등 이식을 위한 절차를 진행해 왔으나 기업 사정으로 추진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그사이 췌도를 제공할 무균돼지 8마리 중 2마리가 폐사하는 등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연구팀은 지난해 8월 정부 연구비 지원사업에 ‘SOS’를 쳤으나 고배를 마셨다. 또 임상연구 유지를 위해 국가와 민간 루트를 다각도로 모색 중이나 마땅한 활로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15일 의료계,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이종이식 전문기업 제넨바이오는 가천의대 길병원, 서울의대 장기이식연구소와 함께 2022년 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이종 췌도 이식의 임상시험을 승인받았다. 세 기관은 지난해 2월 임상시험 추진 계획을 설명하는 언론 브리핑도 열었다.
서울대 의대가 무균 미니돼지의 보급, 제넨바이오는 돼지 췌장에서 췌도 분리·제품화, 길병원이 환자에 췌도 이식을 맡는다. 길병원은 지난해 1월 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을 받고 임상 가능 환자 선별과 교육 등을 진행해 참여자를 10여명으로 압축했다. 최종 임상시험 대상은 2명이며 애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0~11월 이들에게 돼지의 췌도를 이식하고 2년간 추적 관찰 예정이었다.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 됐다”
임상시험 책임자인 김광원 가천대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기업 내부 사정으로 계획대로 추진하기는 힘들게 됐다.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됐다.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임상시험 연구비 확보가 불투명한데 환자 선별 작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어 중단했다. 이달 중순까지 해당 기업이 ‘고(Go)’냐 ‘스톱(Stop)’이냐 답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7월 복지부에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지원사업(이종 간 이식은 고위험 연구에 해당)도 신청했으나 심사에서 ‘부적합’ 탈락했다. 복지부 첨단재생의료·바이오의약품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중증 1형 당뇨의 경우 인슐린 펌프나 연속혈당측정기 등 기존 치료 방법도 있는데, 이종 췌도 이식이 얼마나 이득을 줄 수 있을지 유효성 근거가 부족하다고 심의위원들이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또 “선도적 기술임은 맞지만, 과거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 빨리 가는 것도 좋지만 안전하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근거 자료를 보완해 다시 신청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 교수는 “췌도 이식 기술 연구가 초기부터 우여곡절을 딛고 임상시험 단계까지 왔다. 그간 두 차례 식약처 임상시험 신청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 관련해 많은 자료를 보완해서 최종 허가를 받았는데, 국가기관 심사자의 관점에 따라 심의 결과가 달라 실망스러웠다”면서 “우리나라 연구 풍토가 이런 식으로 기가 꺾이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그는 “췌도 이식의 대상은 1형 당뇨 중에서도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저혈당(혈당의 심각한 변동성, 저혈당무감지증) 환자로 인슐린 펌프나 24시간 연속혈당기, 저혈당에 심화된 교육에 의해서도 교정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1형 당뇨 환자 3만여명 중 저혈당무감지증을 겪을 정도의 심각한 이들은 약 5%(1500여명)로 추정된다.
“해외에선 한국 임상시험 예의 주시”
이종 췌도 이식은 2013년 출범해 2020년까지 수행된 복지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을 통해 얻어진 성과이며 7년간 400억원 가까이 투입됐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을 지낸 박정규 서울대 의대 장기이식연구소장은 “우리나라 이종 이식 연구는 ‘유행’을 탄다. 해외에서 형질전환(유전자 편집) 돼지의 심장을 이식한 사례(2022년 1월 말기 심부전 환자에 세계 첫 이식 61일 생존, 지난해 9월 두 번째 환자에 이식 40일 생존)가 나오자 형질전환 이종 이식 쪽으로 국가 정책 방향이 모이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해외에선 무균돼지 췌도 이식의 가치에 주목하며 한국의 임상시험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질전환 돼지를 활용한 이종 췌도 이식의 경우 바이오기업 옵티팜이 현재 영장류 실험을 진행 중이며 이르면 올 하반기 임상 진입을 계획하고 있다. 이밖에 국립축산과학원도 형질전환 돼지의 이종 이식 장기를 개발하고 있다.
박 소장은 “췌도, 각막의 경우 형질전환하지 않은 무균돼지를 활용해도 이종 간 이식 시 면역거부반응이 덜해 충분히 가능하며, 반면 심장·신장 등 고형 장기는 초급성면역거부반응이 강해 유전자 변형을 통한 형질전환 돼지를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무균돼지 췌도 이식이 성공해야 형질전환 이종 이식 연구도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임상시험 지속을 위해 민간과 국가 연구비 지원 두 트랙으로 돌파구를 고심하고 있다. 박 소장은 “스폰서를 찾으려고 여러 군데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민간에선 같은 이종 이식 사업을 하는 업종이어야 해 쉽지는 않다”고 했고, 김 교수는 “기존 의뢰 기업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국가 연구비 지원 신청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이번 췌도 이식 임상시험용으로 키우던 무균돼지 8마리 가운데 2마리가 노화로 폐사했다. 임상이 계속 지체되면 치료 재료인 돼지 수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