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보다 민주 선택한 대만

입력 2024-01-15 04:08
대만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앞줄 가운데) 총통 후보와 샤오메이친(오른쪽 두 번째) 부총통 후보가 13일 저녁 타이베이에서 개표 결과 당선이 확정된 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친미·독립 성향인 대만의 민주진보당(민진당)이 3연속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대만해협을 둘러싼 양안(대만과 중국) 간,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될 전망이다. 무력시위까지 하며 민진당 재집권 저지에 나섰던 중국이 향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와 안보가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진당 라이칭더 총통 후보는 13일 저녁 당선 확정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구촌 첫 대선에서 대만이 민주진영 첫 번째 승리를 가져왔다”며 “대만은 전 세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계속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중 대리전’으로 불린 이번 선거에서 대만 국민들이 미국을 선택했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라이 당선인은 제16대 총통선거에서 558만표(40.1%)를 득표해 친중 성향 중국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467만표·33.5%)와 중도 성향 대만민중당의 커원저 후보(369만표·26.5%)를 제쳤다. 현 부총통인 라이 당선인은 오는 5월 20일 총통에 취임한다.

라이 당선인을 ‘독립분자’ ‘평화의 파괴자’라고 맹비난했던 중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중국의 대만 담당기구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천빈화 대변인은 “선거 결과는 민진당이 섬(대만) 안의 주류 민의를 대표하지 못함을 보여준다”며 “대만은 ‘중국의 대만’”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선거가 양안 관계의 기본 지형과 발전 추세를 바꾸지 않을 것”이며 “중국 통일의 불가피한 추세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벼랑끝 전술과 긴장이 더욱 심해질 것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도 “이번 선거는 2024년 첫 번째 지정학적 분수령”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역내 영향력을 둘러싼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위기그룹의 수석 중국분석가 아만다 시아오는 5월 총통 취임식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라이 당선인은 미국과 밀착하며 중국에 맞선 차이잉원 현 총통의 계승자로 대만 독립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차이 총통보다 더 강경하다는 평가도 받지만, 민진당이 입법위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국정 운영에 부담을 안게 됐다. 총통선거와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 선거에선 국민당이 전체 113석 중 52석을 확보해 제1당이 됐고 민진당은 51석에 그쳤다. 민중당이 8석으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민진당은 이번 총통선거에서 중국과 갈등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 청년층과 중도층의 이반 등으로 고전이 예상됐지만 지난해 11월 합의됐던 야권 후보 단일화가 무산되고 중국의 군사적 위협 및 경제적 압박이 역효과를 내면서 가까스로 승리했다. 2019년 홍콩 사태로 인해 대만 사회에서 증폭된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지금까지 이어진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송세영 선임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