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 라이칭더(사진)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국 산업계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및 미·중 갈등의 여파가 반도체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면 대만 TSMC의 대안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생태계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을 겨냥한 수출 통제 등 경제 보복카드를 꺼낼 땐 한국 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많다. ‘슈퍼 선거의 해’의 포문을 연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동북아의 안보 지형 변화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점차 커질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는 14일 발간한 ‘대만 총통 선거 결과 및 향후 전망’ 보고서를 통해 “라이 당선인은 현 차이잉원 총통의 양안 및 외교 정책을 계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이 앞으로 국방력을 강화하고 미국·일본 등 민주주의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추구하며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란 뜻이다. 특히 라이 당선인은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도 관심을 두고 있어 일본과 미국 중심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노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진당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대중국 수출 규제에도 협조적이었고 미국으로 반도체 시설을 유치하는 정책에도 긍정적인 편이었다.
정해영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경제·외교적 압력을 강화하고 라이 당선인 집권하에서 공식적인 양안 교류가 재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무협은 중국이 차이 정부보다 양안 관계 인식에서 라이 당선인을 더 불신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물리적인 충돌을 회피하고자 하는 각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양안 관계는 더 악화하기보다 현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최악의 경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3.3% 줄어드는 등 대만(-40%) 다음으로 가장 큰 경제적 피해를 볼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이 미국 동맹국에까지 보복의 범위를 넓히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지난해처럼 갈륨·게르마늄·흑연 등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의 공급망을 무너뜨리는 식의 수출 통제를 가하면 한국 기업은 직접적인 영향권에 든다. 라이 당선인이 중국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한국과의 반도체 협력 강화를 원하고 있어 미국과 대만을 사이에 두고 한·중 외교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