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상대 독성실험… 유죄로 뒤집힌 SK케미칼·애경

입력 2024-01-12 04:05
유해 화학물질 원료를 이용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안용찬(오른쪽) 전 애경산업 대표가 11일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서울고등법원 앞을 나서던 중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계자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유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혐의로 기소돼 1심 무죄를 선고받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대표 등 기업 관계자 전원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관련자들을 재수사해 지난 2019년 7월 재판에 넘긴 지 4년6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

재판부는 “사실상 장기간에 걸쳐 전 국민을 상대로 만성 흡입독성 시험이 행해진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승렬)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제품을 판매한 이마트, SK케미칼 하청업체 관계자 등에게도 금고형 또는 금고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1994년부터 출시·유통된 제품으로 인해 사용자들이 폐 손상 등 피해를 본 사건으로 2011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SK케미칼 등이 제조·판매한 살균제에 포함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과 폐 질환·천식 간 인과관계였다. 이들이 제조한 제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을 원료로 제조된 옥시 제품과는 성분이 다르다. 신현우 옥시 전 대표는 2018년 1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았지만, SK케미칼 등은 앞서 2016년 첫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피해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CMIT·MIT 원료 유해성 조사 자료가 쌓이면서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 홍 전 대표 등을 추가로 기소했다.

1심은 지난 2021년 1월 “해당 물질이 폐 질환·천식을 악화시킨다는 실험 결과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2심에서 국립환경연구원 연구 결과 등을 증거로 추가했다. ‘CMIT·MIT 성분이 폐까지 도달한다’는 연구 결과는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데 활용됐다. 해당 보고서는 호흡기로 들이마신 CMIT와 MIT가 폐에 도달해 상당 기간 머문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로 평가된다. 피고인 측은 “항소심에서 새로운 실험 결과가 추가돼선 안 된다”며 반발했지만 2심은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연구로 인정했다.

2심은 “피고인들이 어떤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제품을 상품화해 판매했다”며 1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유공(SK이노베이션의 전신)이 1994년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출시한 후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백혈구 수치 감소 등 변화가 있어 더 실험이 필요하다’고 했는데도 계속 판매가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이는 결국 2002년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2006년 이마트 가습기살균제 판매로 이어졌고, 피고인들은 어떤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상품화 결정을 내렸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가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폐 질환 또는 천식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며 “상당수는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피해를 입는 등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지적했다.

양한주 임주언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