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냐 친중이냐 내일 결판… 2030 사로잡은 중도 후보도 추격

입력 2024-01-12 04:07

대만 총통선거를 이틀 앞둔 11일 북부 타이베이 도심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대만민중당(민중당)의 커원저 후보가 막판 유세를 벌였다. ‘친미냐, 친중이냐’ 대신 먹고사는 문제를 앞세워 2030 유권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커 후보는 유세차에 올라 지지를 호소했다. 이를 지켜본 30대 천모씨는 “우리가 미국과 계속 가깝게 지낼지, 중국과 관계를 회복해야 할지는 대만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누가 총통이 되든 너무 비싼 집값과 낮은 임금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만은 4년에 한 번 총통과 입법위원(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한날에 치른다. 이번 총통선거에서는 대만 독립·친미 성향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 친중 성향의 제1야당 중국국민당(국민당) 허우유이 후보, 민중당 커 후보가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된 지난 3일까지의 추세를 보면 라이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허우 후보를 앞서고 있다. 그리고 커 후보가 양당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 젊은 세대 마음을 파고들면서 이들을 추격하고 있다.

대만에서 처음 총통과 부총통을 직접선거로 선출한 1996년 이래 지금까지 어떤 정당도 3번 연속 집권하지 못했다. 2016년 취임해 연임한 민진당의 차이잉원 현 총통에 이어 라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사상 첫 3연속 집권이 된다. 또 이 경우 무력으로라도 대만을 통일하겠다고 한 중국의 압박 전략이 선거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된다.

의사에서 정치인이 된 라이 후보는 확고한 대만 독립론자로 알려졌지만 선거가 시작되고는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차이 총통 노선에 따라 중국과 협력할 것”이라며 현상 유지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총통에 당선되면 중국과 대등·존엄의 원칙에 따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출신의 허우 후보는 이날 외신 기자회견에서 ‘친중파이자 대만을 중국에 팔아넘기는 배신자’라는 민진당의 비판을 일축했다. 그는 “대만은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국가다. 내가 당선되면 통일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은 대만해협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중국은 이번 선거를 전쟁과 평화, 쇠퇴와 번영 구도로 몰아가며 노골적으로 민진당 재집권을 반대하고 있다. 천빈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차이잉원 노선을 잇는 것은 대만을 평화와 번영에서 멀어지게 하고 전쟁과 쇠퇴에 가깝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도 이어갔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10일 오전 6시부터 24시간 동안 대만 주변 공역과 해역에서 중국 군용기 15대와 군함 4척이 포착됐다.

이런 가운데 대만의 대표적 친중 인사인 마잉주 전 총통이 꺼낸 시진핑 찬양 발언이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대만 자유시보 등에 따르면 마 전 총통은 전날 독일 매체 도이치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양안 관계에선 시진핑 국가주석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압박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이다. 민진당은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호재로 여기는 분이기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