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재판을 진행하다 사표를 낸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 강규태(53·사법연수원 30기) 부장판사가 지인들에게 “내가 조선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재판 고의 지연’ 지적에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형사합의부 재판장이 공직선거법 사건을 16개월이나 끌다 마무리 짓지 않고 사표를 낸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많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강 부장판사는 전날 서강대 법학과 동기들이 있는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명예퇴직 사실을 전하며 “상경한 지 30년이 넘었고, 지난 정권에 납부한 종부세가 얼만데 출생지라는 하나의 단서로 사건 진행을 느리게 한다고 비난을 하니 참 답답하다”는 글을 올렸다. 강 부장판사의 고향은 전남 해남으로, 재판 지연을 출생지와 연결 짓는 해석에 억울함을 나타낸 것이다. 또 ‘사또’를 언급한 것은 증인이 많은 사건인데 조선시대처럼 일방적으로 재판할 수는 없었다는 뜻을 강조하려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강 부장판사의 처신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사건은 이 대표가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고 말한 것과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 관련 국토교통부 협박이 있었다”는 발언이 허위인지가 쟁점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증인 진술의 디테일을 따져야 하는 뇌물 사건도 아니고, 사안 자체가 어려운 재판이 아니다”며 “증인이 많았다지만 압축적으로 진행했다면 충분히 신속히 마칠 수 있었을 사건”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9월 8일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는데 강 재판장은 준비기일만 총 4차례 열었고 결국 첫 공판은 기소 6개월 후인 지난해 3월 3일에야 열렸다. 재판 준비 절차가 지지부진하고 첫 공판까지 장기간이 걸리는 고질적 문제가 반복됐다.
다만 법원 내부에선 재판 지연을 개인 책임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과거에는 밥 먹듯 야근을 하며 사건을 처리했지만, 요즘에는 그러려면 배석판사 눈치도 봐야 한다”며 “법관의 직무 자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재판을 지연시켜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고, 신속히 해도 보상이 없는 경직된 인사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부장판사는 형사34부에서 2년을 근무해 다음 달 인사 대상이었다. 주요 사건을 맡으면 한 재판부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사무 분담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