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실 때 됐어요, 체포합니다”… 건보 46억 횡령범 필리핀서 덜미

입력 2024-01-11 04:05
경찰청은 지난 9일 오후 5시13분(현지시간)쯤 필리핀 현지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관리팀장 최모씨를 검거했다고 10일 밝혔다. 사진은 현지에서 붙잡힌 최씨. 경찰청 제공

수십억원을 횡령한 뒤 필리핀으로 도주한 국민건강보험공단 팀장이 1년4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피의자는 마닐라 인근의 빌라나 호텔을 전전하며 은신해 왔지만 한국·필리판 경찰 공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청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관리팀장으로 재직하며 46억여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는 최모(44)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10일 밝혔다.

최씨는 지난 9일 오후 은신처인 마닐라의 고급 빌라에서 체포됐다. 필리핀 코리안데스크(한인 관련 사건 전담 파견 경찰)와 현지 경찰로 이뤄진 검거팀은 약 5시간의 잠복 끝에 빌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최씨를 검거했다.

경찰청이 제공한 검거 당시 영상을 보면, 최씨는 집 앞에 잠시 외출을 나가는 듯한 편한 차림이었다. 그는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한국 경찰이 “최○○씨죠?” 라고 묻자 최씨는 순순히 “맞다”고 답했다. 한국 경찰과 동행한 필리핀 이민청 직원이 “이민청에서 나왔다”고 하자 최씨는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이어 “왜 왔는지 아시죠? 집에 가실 때 되셨어요. 체포될 거예요”라는 한국 경찰의 말을 듣고서야 상황을 직감한 듯했다. 경찰은 수갑을 채우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최씨는 해당 빌라에서 월세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필리핀 경찰청 형사국(CIDG)에 유치된 최씨에 대한 국내 송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씨는 2022년 4월 27일부터 총 7차례에 걸쳐 17개 요양기관의 압류 진료비 지급 보류액 46억2000만원을 본인 계좌에 송금해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횡령 자금은 가상화폐로 환전하는 등 은닉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송환하는 대로 자금 사용 여부, 은닉 자금 등을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2022년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사 의뢰를 받고 1년4개월에 걸쳐 최씨를 추적해 왔다. 추적팀은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도주 경로를 파악하면서 세탁물 배달원 등 현지 정보원을 활용해 최씨 얼굴 사진을 확보, 동일 인물임을 확인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