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정순자(85) 할머니는 여느 날처럼 폐지를 줍기 위해 꼭두새벽인 오전 3시 길거리로 나섰다. 수 시간 동안 땀 흘려 모은 폐지는 1㎏당 50원. 최저시급도 안 되는 하루 삯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들었다. 그때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대표 기우진)가 손을 내밀었다. 폐지를 시세보다 6배 넘는 값에 사 갔다. 그렇게 러블리페이퍼와 만난 정 할머니는 이 기업에 정식 취업했다. 어느덧 6년차 직장인이 된 정 할머니는 “하루하루 설렌다”며 반색했다.
“폐지 줍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어쩌겠어요. 살려고 했던 건데요. 근데 이제는 러블리페이퍼를 만나 편하게 앉아서 일할 수 있고 번 돈으로 교회에 헌금도 할 수 있으니 너무너무 행복해요.” 정 할머니가 북받친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폐지줍는 한달 수입 16만원
정 할머니의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난달 말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발표한 ‘2023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를 줍는 노인의 연령은 평균 76세. 이들은 폐지를 수집하는 데 하루 평균 5.4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일주일 중 6일을 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꼬박 모은 폐지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평균 15만9000원. 시급 1226원으로 최저임금의 13% 수준이다. 복지부는 이처럼 노년을 이어가는 이들이 4만2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폐지 수집을 하는 이유는 뭘까. 약 55%가 ‘생활비 마련’이라고 답했다.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는 ‘경제적 지원’(85.3%)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이 같은 노인을 위한 기독교계의 역할도 주목된다.
재활용 작품으로 거듭난 폐지
폐지 수집 노인이었던 정 할머니를 품은 러블리페이퍼 사례가 대표적이다. 러블리페이퍼는 노인들이 주운 폐지를 기존 시세 6배인 1㎏당 300원에 사들여 재활용 캔버스를 만든다. 캔버스에 자원봉사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캘리그래피를 덧입혀 실내 장식 소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작품을 팔아 번 돈은 다시 노인들이 주워온 폐지를 사거나 노인 일자리를 새로 마련하는 데 투자한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지난 9일 인천 부평구 사무실에서 만난 기우진 대표는 “작은 관심만으로도 폐지 수집 노인의 삶을 크게 바꿀 수 있다”며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듯이 노인빈곤 문제에 놓인 분들을 돕는 것은 기독교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전했다.
기 대표는 “대한민국은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코앞”이라며 “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청년과 청소년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회가 노인 일자리 등의 맞춤 전도와 사역을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인·취약계층 환대하는 교계
노인 빈곤층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교계 활동도 눈길을 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울산노회 선교기관에 뿌리를 둔 사회적기업 희망을키우는일터(이사장 이완재 목사)는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사업단’과 ‘울산 희망자전거 사업단’을 펼치며 지역 노인을 비롯해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다.
경북 안동교회(김승학 목사)는 노인종합복지센터를 설립해 경안노회유지재단(이사장 임보순 목사), 안동시와 함께 2014년부터 매해 100여명의 어르신에게 안동문화관광도우미사업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주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완재 희망을키우는일터 이사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교회는 사회를 돌보는 시설로 취약계층을 돌봐야 하는 곳”이라며 “교회에서 진행하는 서비스 등을 활용해 노인 일자리 창출을 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인천=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