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윤영찬의 ‘원칙과 상식’

입력 2024-01-11 04:10

‘원칙과 상식’이란 이름은 뜯어볼수록 잘 지은 거였다. 원칙을 지키겠다는 각오, 상식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다짐만큼 지금 정치판에 필요한 게 또 있을까. 김종민 윤영찬 이원욱 조응천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결성한 이 그룹의 작명은 이재명 대표의 공천권에 납작 엎드린 이들을 무원칙하고 몰상식한 세력이라 꾸짖는 효과가 있었다. 그동안 내온 목소리도 작명의 취지에 부합했다. 방탄·패권·팬덤 정당에서 벗어나자 외쳤고, 이재명 사당화와 개딸식 전체주의를 비판했다.

지난달 10일 이들의 토크콘서트는 1000명 넘게 몰려 성황을 이뤘다. ‘원상(원칙과 상식) 비틀즈! 오케스트라 만들자’란 손팻말이 객석에 등장했다. 네 의원을 4인조 비틀즈에 빗대, 밴드를 넘어 오케스트라로 세력을 키우자는 뜻이었다. 윤영찬 의원이 사회를 맡아 많은 말을 했다. “왜 우리 당이 이 대표 방어에 온 힘을 쏟아야 하냐”며 직격했고, ‘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상식’을 묻는 질문에 불체포특권을 예로 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약속을 안 지킨다면 공당 자격이 없는 것”이라 비판했다.

꼭 한 달 만인 어제 이들이 마침내 ‘이재명 정치의 실패’를 선언하며 탈당했는데, 윤 의원만 쏙 빠졌다. 막판에 그리된 사정은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성희롱 사건이라고 한다. 지역구(경기 성남 중원) 경쟁자인 친명계 현 부원장의 출마가 불투명해지면서 윤 의원의 공천 가능성이 높아지자 잔류를 택했다는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 ‘원칙’을 말하더니 사당화라던 이재명 체제의 공천을 택하고, 상황이 바뀌어도 약속을 지키는 게 ‘상식’이라더니 상황이 바뀌자 그동안 해온 말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 됐다. 원칙과 상식의 무게보다 배지의 무게가 그에겐 더 컸던 듯하다.

윤 의원의 이런 선택은 다른 세 의원마저 ‘공천받기 힘드니 탈당한 것 아니겠냐’는 의심을 사게 했다. 원칙과 상식. 참 좋은 말인데, 우리 정치판에선 너무 허망하게 무너진다. 그나저나 윤 의원은 이제 원칙이나 상식을 말하기 민망할 텐데, 무슨 말로 정치를 하려나….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