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법원 정기인사를 앞두고 이어지는 법관들의 사의 표명과 향후 인사에 따른 재판부 교체로 주요 재판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재판장의 사표 제출로 총선 전 선고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재판의 경우 송영길 전 대표 보좌관 1심 판결도 인사이동으로 인해 다음 재판부 몫이 됐다. 매년 재판부 변동으로 사회적 파급력이 큰 재판의 심리 지연이 심화하는 것에 대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2부(재판장 김정곤)는 9일 송 전 대표 보좌관 출신 박용수씨 공판에서 “다음 달 인사에서 재판부가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남은 절차는 판결을 담당할 새 재판부가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다음 기일을 3월 5일로 지정했다. 재판부는 오는 31일 돈봉투 의혹 사건과 관련해 먼저 기소됐던 윤관석 무소속 의원과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의 1심 선고를 진행한다. 이 재판부에는 지난 4일 구속 기소된 송 전 대표 사건도 배당돼 있는데 박씨와 송 전 대표 사건은 새 재판부가 선고를 내리게 됐다.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의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사건도 현 재판부가 선고를 내릴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수원지법 형사11부 재판장인 신진우 부장판사도 수원지법에서 2년간 근무해 정기인사 대상이다. 이날 재판은 이 전 부지사 측의 잇따른 법관 기피 신청으로 77일 만에 재개됐는데, 그나마도 재판 절차 진행을 놓고 이 전 부지사와 변호인 의견이 엇갈려 50분 만에 끝났다.
재판에서 변호인은 핵심 증인인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등에 대한 반대신문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가 발언을 제지하는 등 재차 혼선을 빚었다. 변호인은 이 전 부지사와 논의한 뒤 “다음 기일 전 반대신문 여부를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3개월 전부터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었는데 아직도 준비가 안 됐다는 건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재판부는 오는 16일까지 의견을 받은 뒤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매년 반복되는 판사들의 줄사표도 재판 지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핵심 보직에 임명된 판사들이 잇따라 옷을 벗는 바람에 재판의 질과 속도 하락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장이었던 서울중앙지법 강규태 부장판사가 최근 사직서를 제출해 이 대표 사건 재판도 더 장기화할 전망이다. 강 부장판사는 퇴직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법에서도 최근 판사 10여명이 줄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법관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교체되면 재판 갱신 절차를 거쳐야 해 그만큼 심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통상 1~2년마다 변경되는 법관의 사무분담 기간을 연장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근 “각급 법원 실정에 맞는 사무분담으로 심리 단절과 중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장 출신이 바로 사표를 낸다는 건 그만큼 법원에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판사가 많아졌다는 의미”라며 “힘들게 일해도 보상이 없는 인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한주 신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