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태양광·풍력 인프라 부족”… ‘RE100’ 바람으로 그치나

입력 2024-01-09 04:04

한국 기업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가입이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생에너지 생산과 송전 등 인프라가 아직 갖춰지지 않은 현실론이 힘을 받는 모양새다. 국제적으로도 RE100 가입은 줄어드는 추세다. 산업당국도 RE100만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한 대처를 모색 중이다.

8일 산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RE100에 가입한 한국 기업 수는 지난해 말 기준 36개사다. 2020년 SK그룹 6개사(SK하이닉스, SK텔레콤, SK㈜,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SKC)가 동시 가입했고, 2021년 LG에너지솔루션 등 8개사가 뒤를 이었다. 2022년에도 삼성전자 등 13개사가 가입했다. 그러나 지난해 가입사 수는 9개사에 불과했다. 더구나 9곳 중 4곳은 탄소 배출이 적은 금융사(삼성생명, 삼성화재, 신한금융그룹)와 플랫폼 사업을 하는 카카오였다. 나머지 5곳만 제조 기업이었다.


해외로 범위를 넓혀도 RE100 인기는 시들해졌다. 2020년과 2021년엔 64개사와 66개사가 RE100에 가입했는데, 2022년 58개사, 지난해 37개사에 그쳤다.

RE100은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 주도로 2014년 시작된 글로벌 캠페인이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퍼지면서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산업계는 좁은 국토에 태양광, 풍력 등을 조달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기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호소한다. 비영리기구 캠페인인 RE100은 강제성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반도체, 철강, 디스플레이 등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공장에서 전력을 많이 사용한다”며 “이런 에너지 다소비 기업이 급격하게 에너지 전환을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단점인 ‘간헐성’(기상 조건에 따른 발전량 변동)을 보완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고 토로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도 “산업 특성상 세계적으로 RE100을 선언한 철강 기업이 없다”며 “제철소의 경우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부생가스를 회수해 전기를 생산하는 데 쓰고 있으나 이런 노력은 RE100에서 말하는 재생에너지에 해당하지 않아 평가절하된다”고 했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전력거래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6.2%로 여전히 한 자릿수에 그쳤다.

RE100을 선언한 기업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해당기업 한 관계자는 “해외 공장에선 RE100을 달성한 곳이 있지만 국내 RE100 달성률은 크게 낮은 편”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삼성전자는 2022년 미국에서 먼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했다. 현대자동차 체코 공장도 2022년부터 RE100 인증을 받았고 LG에너지솔루션도 폴란드와 미국 공장에서 이미 RE100을 달성했다. 그러나 아직 국내 현장에선 전무하다.

정부도 탄소 중립과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명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민간에서 RE100에 집중하기보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수소연료전지 등을 함께 사용하는 CF100(Carbon Free 100%)을 보완재로 고려하도록 권하고 있다. CF100은 2018년 구글이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방향을 틀면서 원자력 사용 비중을 늘리려는 추세다.

RE100 가입 기업은 줄었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의 참여가 협력업체 동참으로 이어지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택중 한국RE100협의체 의장은 “RE100 참여율이 줄고 있으나 통상 이슈와 맞물리면서 소재·부품·장비 등 수출 기업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