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일생은 낮은 자와 함께하고 소외된 병든 자들과 함께하신 삶입니다. 그 시대에는 낮은 자들을 죄인이라고 여겼습니다. 반면에 제사장이나 사두개인, 바리새인은 지도자로서 의인 행세를 했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야 성공했다고 인정받습니다.
낮은 자, 죄인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소신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출세와 성공을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높은 자리를 탐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예수님과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부활을 증언하며 살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가던 중 거리에서 구걸하며 걷지 못하는 장애인을 만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했더니 장애인은 고침을 받고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이자 베드로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과 권력자들은 이를 불편해 했습니다. 결국, 사도들을 잡아 감옥에 가둬 심문했습니다.
대제사장이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묻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대답합니다.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받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여기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병자가 나은 것을 구원받았다고 한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인데, 베드로는 병자가 고침을 받아 건강하게 된 것이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권면했듯이 우리 신앙인은 날마다 구원을 이뤄야 합니다. 장애인이 걷게 된 것이 구원이고, 죄인이 죄 사함받은 것도 구원입니다. 영과 육이 회복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람의 구원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뤄졌다고 증언합니다.
제사장은 머리가 아팠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벌인 일과 하나님의 일이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예수의 손을 들어주심으로 자신들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하지만 간혹 예수의 이름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에게 안수를 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외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의 이름 자체에 능력이 있다고 믿기보다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들은 성령을 받아 주님이 가셨던 길을 따랐습니다. 예수의 이름에 걸맞게 산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힘과 주님의 능력 가운데 무엇을 쫓을 건가요. 세상의 길과 하나님의 길은 다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셨던 삶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의 편에 서지 않고, 권세자의 편에 서지 않고, 교만한 자의 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을 얻는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매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과 죄악의 권세를 이겨나가길 축복합니다.
조영식 목사(동부교회)
◇동부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대구노회에 속한 교회로서 대구시 동구에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신앙의 목표로 삼고 섬김을 삶으로 실천하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