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북한의 서해상 포 사격으로 연초부터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측은 지난해 12월 30일 “북남 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고착됐다”며 남북한 통일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한반도 통일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열망하는 이들이 있다. 국내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 3만4000여명이다.
30여년간 학계와 현장에서 탈북민을 연구한 신효숙(61) 북한대학원대 겸임교수는 이들을 분단의 아픔을 전하며 통일의 절실함을 일깨워주는 ‘통일 아미(ARMY)’로 정의한다. 아미는 방탄소년단(BTS)의 팬덤 이름이다. 그는 BTS 음악과 메시지를 자발적으로 만방에 알리는 이들의 행태가 통일을 갈망하는 탈북민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봤다. 자유를 위해 사선(死線)을 넘은 자신의 이야기로 한반도 통일이란 거대 담론을 세계에 알리는 이들이야말로 ‘남북한 통일의 첨병’이라는 것이다.
탈북민의 이주부터 정착까지의 전 과정을 망라한 ‘분단시대 탈경계의 동학’(명인문화사)을 펴낸 신 교수를 최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만났다. 온누리교회 집사인 신 교수는 현재 한반도평화연구원(KPI) 연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구소련에서 본 북한의 미래
고려대 교육학과 졸업 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진학해 ‘맹자와 순자의 교육사상 비교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박사 논문 주제를 북한으로 잡았다. 1991년 유학길에 오른 남편을 따라 구소련에 왔다가 사회주의 종주국의 종말을 눈으로 보며 느낀 바가 컸기 때문이다.
구소련 해체로 러시아는 당시 엄청난 진통을 겪고 있었다. 배급이 끊어지자 시민들은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소지품을 갖고 나와 길거리 시장을 형성했다. 산업구조 재편으로 직업을 잃은 노동자들은 두세 가지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당시 그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친 가정교사도 현직 초등학교 교사였다.
‘구소련처럼 북한도 체제 종말을 맞는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격변기 러시아 사회를 본 신 교수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다. 북한 급변 사태 발생 시 한반도에 도움이 될 만한 연구를 해보자는 결심을 한 배경이다. 이후 그는 소련이 공개한 외교문서를 분석하고 소련에 유학 왔다 정착한 북한 출신 고려인을 심층 면접해 박사 논문 ‘소련군정기 북한의 교육’을 집필했다.
7년여간의 러시아 생활 이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여러 대학에서 체제전환국가의 교육과 북한학 등을 강의했다. 이들 학문을 다루던 신 교수가 탈북민 연구를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에서다. 북한학 강의에 한 탈북민을 강사로 초빙했는데 그가 약속 시각에 30분을 지각하고도 미안한 기색이 없는 걸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당시 북한은 전력 부족과 교통수단 미비로 약속을 제때 지키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 역시 북한의 습관을 이어온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한 주민이 서로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소한 것도 통일 과정에 큰 걸림돌이 되겠다 싶었다”며 “이제껏 통일 교육에 천착해 북한 주민의 정서와 일상에 무지했던 나를 반성했다”고 말했다.
남북 화해의 마중물, 탈북민
탈북민을 향한 반성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신 교수는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로 적을 옮겨 탈북 학생의 학교 적응을 도왔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엔 2011년 창립 멤버로 합류해 지난해 6월까지 탈북민 정착 지원의 현장을 지켰다.
연구자로 20여년, 활동가로 10여년간 탈북민을 연구한 그는 우리 사회가 탈북민을 ‘초국적 이주’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발적 의지로 북한과 중국, 동남아 국가를 넘나들며 초국적 이주를 경험한 탈북민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문화 형성자가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신 교수는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바꾸고자 국경을 넘고 언어를 습득하며 남한 입국을 선택한 이들은 난민이자 이주민”이라며 “더 좋은 삶을 택하는 능동적 주체로 이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회의 심리·정서 지원 큰 힘
정부는 탈북민의 정착을 위해 여러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탈북민 수가 늘면서 일반 주민과의 접촉도 빈번해졌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탈북민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살아온 문화가 다르다 보니 오해도 쉽게 생긴다. 신 교수는 “동정과 관용의 태도만으론 탈북민과 내적 통합을 이룰 수 없다”며 “인정 공감 환대의 가치로 이들을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 이들 가치를 구현키 위해선 한국교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같은 탈북민보다 남한 주민의 사회적 지지를 받은 이들이 더 정착에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교회는 이들에게 정서적 지지와 용서, 회복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공동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22년 탈북민 출신 상담사가 백골 상태로 고독사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며 “이런 죽음이 더는 없도록 교회가 탈북민의 치유적 회복에 나서 달라”고 주문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