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히 건너와요. 얘들아, 오늘도 반가워~.” 지난 3일 오전 8시 40분 강원도 영월 A초등학교 앞. 학교 보안관인 B씨가 등교생들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넸다.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B씨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10년 전에는 애들이 꽤 있었거든요. 학년당 6학급 정도는 있었는데 지금은 3학급씩 남았습니다.” 10년 전 800여명에 달하던 학생들은 현재 500여명으로 쪼그라들었다.
50대가 테니스동호회원 막내
지난해 3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영월군의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율은 약 32%다. 전국 평균(18.0%)보다 2배 정도 높다. 고령화 여파는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 곳곳에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다. 인사이동으로 지난해 3월 이곳에 온 김광훈(가명·51)씨는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했다 적잖이 당황했다. 50대인 그가 동호회 막내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퇴근 후 산책을 자주 하는데 거리를 둘러보면 강아지와 고양이, 어르신뿐”이라고 전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나눔애교회(최종덕 목사) 청년부는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최종덕 목사는 “학업과 취업 등의 이유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가니 유지하는 일이 매우 힘들다”며 “청년부를 두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부흥이라 생각할 정도”라고 말했다.
112년의 역사를 지닌 영월중앙교회(전규택 목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전규택(59) 목사는 “교회 당회원 188명 중 80여명이 7080 어르신”며 “예순이 다 된 제가 이곳에선 청년층”이라고 말했다. 60대 성도가 칠순 넘은 어르신 성도들을 섬기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됐다. 봉사자가 부족해 수련회는 엄두도 못 낸다. 교회는 야외 예배와 체육대회를 새해 목표로 세워서 침체된 교회 분위기를 바꿔보겠다는 계획이다.
주인이 떠나 방치된 빈집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영월군청 등 인구 소멸 위험이 큰 지역자치단체는 안전사고와 범죄 예방 등을 위해 빈집을 주차공간으로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을을 안내하던 전 목사는 “이곳도 원래 집이었고 저기 보이는 저곳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럼에도 교회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전 목사는 “예수님은 가난하고 헐벗은 자에게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금도 교회가 지역주민에게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지역 복음화를 위해 끝까지 사역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학교 통폐합, 도시교회 턱밑까지
인구 소멸로 인한 축소사회 여파는 교회학교 현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전엔 지방의 소규모 교회에서 두드러졌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서울과 수도권 등 도심지역 중대형 교회에서도 축소사회의 현실을 목도할 수 있다.
경기도 파주의 중대형교회인 C교회는 팬데믹 기간에 교회학교 부서를 통폐합했다. 교회는 현재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을 각각 대상으로 나눴던 유년부와 초등부를 통합해 초등부로 일괄 운영 중이다. 비슷한 규모의 경기도 부천의 D교회 역시 같은 시기 유·초등부를 통합했다. D교회 담당 사역자 E씨는 8일 “20분간 설교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인식 수준 차가 확연하다”며 “학년 간 수준 차이 때문에 행사를 준비하는 데도 제약이 따른다. 다시 나누자니 교사가 부족해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급기야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같은 반으로 편성하는 교회학교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권진하 교회교육훈련개발원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유·초등부 통합을 넘어 유치부와 초등부를 통합하는 교회가 나오고 있다”며 “문제는 저출산으로 이런 사례가 한국교회 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심 교회 인력 누수 심화
축소사회 현상으로 빚어지는 ‘은퇴 구역장’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구역장은 전통적인 교회 소그룹을 이끄는 주축이다. 보통 신앙이 검증된 권사가 주로 맡는다. 적게는 10명 남짓에서 많게는 20~30명에 이르는 구역원의 대소사와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을 챙기는 사역이다 보니 선뜻 봉사자로 나서는 이가 많지 않다. 은퇴 나이인 70세가 넘어도 구역장을 놓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는 건 이런 이유다.
‘은퇴 구역장 현상’은 서울 도심에서 이미 현실화됐다. 서울 중구의 한 교회에서는 은퇴 나이를 넘긴 이들도 계속 구역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다만 고령으로 구역원 전·출입 등 기본적 구역 관리에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편이다.
은퇴를 앞둔 구역장들 역시 후임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충북 청주의 한 교회 부목사는 “5년 안에 은퇴를 맞는 구역장이 몇 분 계시는데 후임이 없어 이분들이 은퇴하면 정말 대책이 없다”면서 “‘은퇴 구역장’이 활동하는 타 교회의 현실을 십분 이해한다”고 말했다.
영월=글·사진 김동규 기자 양민경 장창일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