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인기과 가느니 군대 가죠”… 필수의료 권했다 민원도

입력 2024-01-05 00:02
이필수(왼쪽) 대한의사협회장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2024년 의료계 신년하례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 한 대학병원의 2024년도 상반기 레지던트에 지원했던 A씨는 인기 과로 꼽히는 피부과에 지원했다. 지난달 26일 합격자 발표에서 A씨는 고배를 마셨다. 지원자가 몰리면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2지망이 가능한 필수의료 과목은 선택하지 않았다.

A씨는 지원 당시 이번 모집에서 탈락하면 입대해야 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2지망은 쓰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4일 “다른 과를 2지망으로 쓸 수 있다고 안내받긴 했지만, 비인기과를 가느니 차라리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도전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과 레지던트 1년 차인 정모씨도 “2지망에 합격하면 주변에서 ‘진짜 갈 거야’라고 물으며 말리는 반응이 흔하다”고 전했다.

이런 경향은 전체 레지던트 모집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도 전기 레지던트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정원 206명 중 54명(26.2%)을 채우는 데 그쳤다. 산부인과 역시 183명 중 116명이 지원해 확보율이 63.4%에 불과했다. 가정의학과(49.1%) 응급의학과(76.7%) 외과(80.5%)도 미달이었다. 반면 인기가 많은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은 지원율이 각각 143.1%, 172.6%, 165.8%였다.

필수의료 과목에 지원하는 레지던트가 적으면 그만큼 해당과의 전문의 수가 줄어들게 된다. ‘소아과 오픈런’(병원 문을 열자마자 진료 대기하는 현상)이나 ‘응급실 뺑뺑이’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전공의를 수련하는 교수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수도권 한 대학병원 수련 담당자는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하도록 유도를 많이 하곤 있지만, 결국 본인이 선택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특히 요즘 세대는 주관이 확고해서 ‘교수가 비인기과를 권하는 게 기분 나쁘다’며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2지망 지원으로 필수의료 과목에 합격한 경우라도 곧바로 합격자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종합격 의사를 확인한 후에 2지망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비수도권 대학병원 전공의 수련 담당자는 “레지던트 생활을 더블 보드(복수전공과 같은 개념)로 할 게 아니라면 요즘에는 굳이 2지망으로라도 비인기과를 지원하지 않는다”며 “인기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차가 큰 필수의료 분야 수가 보상체계를 개선하고, 고의나 과실이 없는 한 안정적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2024 의료계 신년하례회’에서 “필수의료 체계가 무너지며 위기를 맞이했다. 올해를 의료개혁 원년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전공의 등 의사 인력 소진 방지 등 내용을 담은 필수의료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김유나 차민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