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신노동의 시대

입력 2024-01-04 04:07

2000년대 초만 해도 주요 부처와 기관 기자실에는 내선전화라는 게 있었다. 본사에 있는 부장이 뒷번호 3자리만 누르면 해당 출입기자에게 직통으로 연결되는 전화였다. 마감시간에 세 번 이상 벨이 울린 뒤 전화를 받으면 불호령이 떨어지던 시절이었다. 요즘 젊은 기자들이 스타벅스 같은 카페에서 주로 기사를 쓴다는 것을 알았다. 기업에서는 카페로 떠난 기자들을 자신들의 기자실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급 커피를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있고, 시끄러운 카페에서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하니 ‘꼰대’란다. 기사는 내선전화가 있는 기자실에서만 써야 하던 구닥다리 시대가 저문 것이다.

시대 흐름에 가장 늦게 반응한다는 언론사가 이런 정도이고, 다른 일터의 풍경은 급변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휴가지 근무가 낯설지 않아졌고, 정해진 자리 없이 출근 때마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아 일하고 퇴근하는 공유오피스식 일터도 생겼다.

근무 행태뿐 아니라 MZ세대로 대변되는 젊은 노동자들의 인식도 변했다. 국민일보가 신년기획으로 쓴 ‘신노동의 시대’ 기사에 따르면, ‘넥타이부대’가 지고 ‘킹산직’(킹+생산직)이 뜨고 있다. 지난달 10년 만에 생산직을 공개 채용한 현대차에는 수만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실제 A급 대기업 생산직은 대졸 사무직 공채 못잖은 보수와 처우를 보장받는다. 특근이나 잔업 수당을 포함해 연간 1억원 안팎의 돈을 손에 쥐면서 명문대 출신 대기업 사무직보다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고, 정신적으로는 더욱 여유로운 삶을 산다는 자부심이 크다. 예전에는 ‘공돌이’라는, 사회적으로 비하하는 인식이 깔려 있었지만 그런 시각은 거의 사라졌다.

직장이 인생의 모든 것인 양 승진에 목 매던 현상도 사라지는 추세다. ‘별’(임원)을 달기 위해 뛰는 인원은 입사 동기 100명에 한두 명꼴이고, 대다수는 60세 정년까지 가늘고 길게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대기업에서 ‘상무포기부장(상포부)’, ‘팀장포기차장(팀포차)’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부는 승진 필수 요건인 어학 점수를 일부러 따지 않고 필수 교육도 수료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승진 대상자에서 배제되는 쪽을 택한다고 한다. 팀장 등 책임자가 되어봤자 과중한 업무량에 비해 금전적인 보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리더 포비아’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도 희미해지고 있다. 초단기 일자리로 생계를 꾸리는 ‘긱워커(gig worker)’가 국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산업 성장에 힘입어 기존 비정규직보다 더 유연한 노동 계약으로 맺어지는 초단기 일자리가 뉴노멀로 부상한 모습이다.

이처럼 노동 지형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기존 법체계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임금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자영업자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따라 노동법과 사회보험법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 배달종사자 등 긱워커나 플랫폼 노동자로 불리는 이들은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노무 제공자’로 구분돼 부당해고 등에도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는 현재 긱워커가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근무하는지에 대한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직 전성시대에도 ‘그늘’은 있다.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양극화 현상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산업의 인공지능(AI) 대전환이 시작되면서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해졌다. 신노동의 시대가 우울한 시대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 정부와 기업 모두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성규 산업1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