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일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면서 ‘영장 제도 개선’과 ‘재판 지연 해결’에 방점에 두고 법원을 이끌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 지연 문제와 관련해서는 원론적 당부 수준을 넘어 ‘특별한 사유 없는 변론 재개 자제’ 등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시무식에서 “법원장이 중심이 돼 장기 미제사건 처리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각급 법원 실정에 맞는 사무분담 장기화(한 재판부에 장기간 근무)로 심리 단절과 중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조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 해결 방안으로 법원 인사 시스템을 직접 거론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행 사무분담 제도에서는 재판장과 배석판사 교체가 잦아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재판부가 교체되면 사건 내용을 다시 파악해야 해 많은 시간이 허비되기 때문이다. 유죄 선고를 예상한 피고인 측이 기존 재판부 기피신청 등 고의 지연 전략을 쓴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달 조 대법원장 취임 후 처음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는 재판 지연 해결책으로 통상 1~2년인 판사 사무분담 변경 주기를 2~3년으로 늘리자는 의견이 건의됐다.
조 대법원장은 신속한 절차 진행도 강조했다. 그는 “가능한 한 신속히 첫 기일을 지정하고, 변론이 종결된 날부터 판결이 선고되는 날까지 너무 시간이 늘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특별한 사유 없이 변론이 재개돼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 업무에 매진해 온 법관답게 재판 절차를 조목조목 짚고, 어떤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지 세밀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구속 및 압수수색 제도 개선을 핵심 법원 현안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조 대법원장은 헌법상 신체의 자유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언급하면서 “인신 구속과 압수수색 제도를 개선하고 적정하게 운용해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고,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실체적 진실 발견을 조화롭게 구현하겠다”고 했다. 다만 제도 개선의 구체적인 방향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 때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와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법관이 영장 심사 때 사건 관련자를 직접 심문할 수 있게 하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의 경우 지난해 대법원이 도입을 추진했지만 검·경·공수처 등 수사기관 반발로 도입이 보류됐다. 개선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면 법원과 수사기관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피의자에게 거주지 제한 등 조건을 달아 석방하는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의 경우 검찰은 법원 결정에 불복할 수 있는 ‘영장 항고제’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검찰은 구속영장 기각에 불복해 상급심에 항고할 수 없고 재청구만 가능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