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재명’ 파란색 왕관 쓰고 접근해 순식간에 범행

입력 2024-01-03 00:02 수정 2024-01-03 00:02
부산 강서구 대항전망대에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습격한 남성이 경찰에 제압되고 있다. 이 남성이 머리에 쓴 파란색 왕관 모양의 모자에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혀 있다. 붉은색 원 안은 범행에 사용한 흉기.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흉기 습격을 당했다. 피의자 김모(66)씨가 3주 전부터 이 대표 주변을 맴돌았고, 이번에도 인터넷을 통해 미리 흉기를 구입해 하루 전날 현장을 방문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과 SNS,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부산 강서구 대항 전망대에서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이 대표는 취재진 질문에 답변을 끝낸 뒤 서서히 발걸음을 떼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취재진에게 빽빽하게 둘러싸인 채 서서히 걸었다. 취재진 바로 뒤에는 머리에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힌 파란색 왕관 모양 모자와 뿔테 안경을 쓴 60대 남성이 왼손에 종이와 펜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있었다. 이 남성은 “사인해 주세요. 사인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취재진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이 대표와 매우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갔다.

그런데 오전 10시27분쯤 주변이 약간 느슨해지는 순간 이 남성이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이 대표의 목 부위를 찔렀다. 범행을 인지한 주변에서 “악” 하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 대표는 곧바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고, 범인은 주변 사람들과 경찰에 의해 바로 제압됐다.

생각지도 못한 피습 사건에 놀란 지도부와 당직자들은 급히 주변에 있는 휴지와 손수건을 동원해 지혈을 시도하며 응급조치에 나섰다. 사고 직후 119 구급대에 신고했지만 현장이 외지에 있어 구급대는 사고 후 20여분이 지난 10시47분쯤 현장에 도착했고, 오전 11시13분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됐다. 이 대표는 목 부위에 1.5㎝ 정도 열상(피부가 찢어져서 생긴 상처)을 입었고, 의식이 있는 채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경정맥이 손상된 것으로 추정돼 대량 출혈이나 추가 출혈 우려로 오후 1시쯤 헬기를 이용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만약에 경동맥이 손상됐었다면 구급차 도착까지 걸린 시간을 고려했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경찰청에 즉시 수사본부를 설치한 경찰은 오후 언론 브리핑을 통해 “김씨가 조사 과정에서 이 대표를 죽이겠다는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범행 당시 상의 재킷에 길이 18㎝ 흉기를 숨기고 있다가 꺼내 이 대표를 찌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표 공격에 쓴 흉기를 인터넷에서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김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배후 유무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김씨는 충남 아산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김씨의 정당 가입 여부를 확인하려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당적 확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달에도 이 대표가 참석한 행사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지난달 13일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 부산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 현장 인근에 있었지만 인파 때문에 이 대표와 직접 접촉하지는 못했다. 당시에도 왕관 모양의 띠를 머리에 두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전날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을 미리 찾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경찰은 김씨가 범행 장소를 둘러본 뒤 가까운 숙박업소 밀집 지역에서 하루를 머무른 것으로 보고 그의 동선을 확인 중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담당할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부산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철저히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부산=강민한 기자, 이형민 기자 kmh010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