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의 한 계열사 상근 고문으로 지낸 A씨는 회사 담당 부서로부터 올해부터 골프 회원권, 법인카드, 대리기사 등 각종 혜택이 예전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긴축 경영에 돌입한 회사가 현직 임원은 당연하고, 상근·비상근 고문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복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비용 절감을 한다는 취지였다. 지난 연말 대기업에서 승진한 B씨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종이 한 단계 낮아졌지만 그마저도 감지덕지했다. 다른 대기업은 더 척박한 환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연말 인사와 연초 시무식에서 꺼낸 공통 키워드는 ‘긴축’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우선순위’를 유독 강조했다. 유·무형의 자원 투입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순서를 정해 집행하라는 뜻을 담았다. 그는 “과거 세 차례의 경기 침체 기간에도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둔 기업은 생존을 위한 비용 절감과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의 균형을 유지한 기업”이라고 밝혔다.
해외 출장 시 임원 비즈니스석 이용 자제 캠페인까지 벌이는 SK그룹은 각종 비용뿐 아니라 인력 슬림화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이날 신년사에서 “구성원 모두가 비효율적이고 낭비되는 것들을 찾아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자”고 당부했다.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에서 주요 대기업 경영진은 생존을 위해 비용 효율화와 함께 기술적 우위를 앞세운 ‘본원적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일제히 던졌다. 삼성에서는 이재용 회장을 대신해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이 공동 신년사를 통해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서 업계 내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고, 가전 등 디바이스경험(DX) 부문도 체감 성능과 감성 품질 등 품질 경쟁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형욱 SK E&S 사장은 “올해는 지속적인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최적화, 4대 사업(LNG-수소-재생에너지-에너지솔루션) 간 유기적 연계 및 상호 보완적 시너지 강화를 통해 전(全)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룹이 처한 상황을 ‘초유의 위기’라고 진단한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온리원(ONLYONE) 정신 재건을 통해 압도적 1등, 초격차 1등을 달성해야 한다”고 위기의식을 불어넣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도전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해 고금리·고물가·저성장으로 열악한 경영 환경이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이러한 시기에 생존을 넘어 글로벌 챔피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스스로를 혁신하는 ‘그레이트 챌린저’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초격차 기술’보다 이제는 후발주자가 따라오거나 넘볼 수 없는 ‘절대 기술’ 경쟁력이 절실한 시기가 왔다”고 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